조선일보 2015-6-10
◇덕혜옹주 옷이 왜 일본에
덕혜옹주의 복식은 현재 국내에 전혀 남아 있지 않다.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 덕혜옹주의 옷과 생활용품 50여점이 있다. 이 유품들은 지난 2012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덕혜옹주' 특별전에서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었다.
마지막 황녀의 옷이 일본에 남아 있는 건 안타까운 우리 근현대사 때문이다. 고종과 궁녀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는 1925년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일본의 요구로 13세 때 강제 일본 유학을 갔다. 열아홉 살이던 1931년에는 쓰시마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결혼했다. 아버지처럼 따랐던 오빠 순종과 어머니가 잇달아 세상을 떠난 뒤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 결혼 1년 전에 이미 조발성 치매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덕혜옹주는 딸을 출산한 직후 정신병원 신세를 졌고, 1955년 이혼당했다.
남편 다케유키는 이혼 뒤 조선 황실에서 보냈던 혼례품을 비롯해 옹주의 옷들을 오빠인 영친왕에게 돌려보냈고, 영친왕 부부는 이를 당시 문화여자단기대학(문화학원 전신)에 기증했다. 이후 복식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덕혜옹주 유물은 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박물관이 소장품을 조건 없이 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들이 기증받은 유물을 '순수 기증'이라는 형식으로 한국에 돌려주는 뜻깊은 사례"라고 했다.
◇황실 복식문화 알 수 있어
초록색 당의는 대한제국의 황실 복식을 규명해줄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가슴과 등, 양어깨에 오조룡(五爪龍·발톱이 5개 있는 용)을 금박한 보(補)가 부착돼 있으며 옷 전체에 '수(壽)'와 '복(福)'자를 금박했다. 아기 때 입은 붉은색 스란치마는 붉은색으로 겉감을, 분홍색 모시로 안을 댄 겹치마로 초록 당의와 한 벌이다. 치마 아랫단에 '복(福)' '백(百)' '세(歲)' '수(壽)' 같은 글자와 각종 화초 무늬를 금박해 화려하다.
◇"양국 우호 증진 계기 됐으면"
이번 기증은 오누마 스나오(大沼淳·87) 문화학원 이사장(복식박물관장)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는 문화재청과의 협의 과정에서 "굴곡 많은 덕혜옹주의 유품이 한국에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결심을 굳혔고 양국 우호 증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누마 이사장의 지기인 김순희 초전섬유·퀼트박물관장이 꾸준히 설득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기증식은 오는 24일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며, 유물들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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