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19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를 근접학(Proxemics)이란 학문으로 정립해 연구했다. 그는 사람 사이의 친밀도가 물리적 거리에 반영된다고 보고 이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자기 몸에서 45㎝ 이내는 ‘친밀한 거리’다. 가족이나 연인, ‘절친’ 등 가까운 사람에게만, 그것도 일시적으로 허용된다. 45㎝~1.2m는 ‘개인적 거리’다.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 소통할 때 보통 이 거리를 유지한다. 1.2~3.6m는 업무나 모임 등 사적이지 않은 사람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 그 이상은 의식이나 행사 때 보여지는 ‘공적인 거리’로 분류된다. 문화와 환경에 따라 범위가 달라질 수 있지만 네 단계의 영역에 대한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한다.
메르스 같은 감염병이 유행하면 이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측정하기 어려운 위험을 피하려는 자기방어 본능이 발현된다. 외출과 쇼핑, 약속도 줄인다. 경제도 사회도 모두 위축된다. 이거야 어쩔 수 없다. 리더십과 시스템의 역할은 그 다음이다. 타인과의 정상적인 거리를 회복하도록, 그래서 사회가 다시 굴러가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메르스 사태 초기 “3차 감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4차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메르스 환자와의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이라는 감염 기준도 의미가 없어졌다. 최대 14일이라던 잠복기가 더 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처음엔 경황이 없었다지만 확진 환자가 나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허둥대는 당국은 불안감만 키운다.
당연하게도 사람들 사이의 안전거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평소 1.2m가량이던 타인과의 안전거리는 메르스 사태 초기 2m가 됐고, 지금은 더 멀어졌다. 리더십과 시스템의 실패가 바이러스에 대한 본능적 공포감을 부추긴 결과다.
메르스 사태는 언젠가 진정될 것이다. 지금 멀어진, 혹은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도 다시 제 거리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실망스러운 우리 사회의 리더십과 시스템도 그럴 수 있을까? 영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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