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2015-7-10
1617년(광해 9년) 광해군은 별궁인 경희궁(건축 당시 명칭은 경덕궁)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는 경희궁 자리는 왕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광해군이 인조의 생부의 땅을 접수해서 또다른 궁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백성들의 땅과 집도 강제 수용됐는데, 보상금 지급이 계속 지연됐습니다.
게다가 임진왜란의 여파로 백성들의 삶이 힘겨운데 새로 궁궐을 짓는데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민심이 흉흉했던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지금같이 인심을 헤아릴 수 없을 때에 근거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하는 걱정을 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합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며 자신도 민심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비록 모든 백성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궐 터 안으로 들어간 집에 대해서라도 일일이 값을 지급해 준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달 안으로 빨리 지급하라"고 강하게 지시했습니다.
■ 세종 10년 (1428) : 계집종의 유산을 뺏으려한 관리를 의금부에서 추국케 하다.
⇒ 조선 초에 계집종도 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이를 상속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1년 (1439) : 전 중추원사가 병이 중하므로 오늘 부터 7월 그믐까지 매일 얼음 1정을 주도록 하다.
■ 광해 9년 (1617) : 이궁 건설로 철거한 집값을 빨리 지불할 것을 다시 재촉하다.
⇒ 새로 짓는 궁궐에 수용된 백성들의 집값을 빨리 지불하라고 지시했다.
■ 숙종 36년 (1710) : 충청도 온양에서 사대부가 노비의 아들을 죽인 것을 처벌케 하다.
⇒ 양반들이 아무리 천한 노비라도 함부로 죽이면 벌을 받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holysea69@gmail.com
'人文,社會科學 > 歷史·文化遺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포럼] 조선은 왜 망했나 (Ⅰ) (0) | 2015.07.16 |
---|---|
[양상훈 칼럼] 한 위대한 한국인을 무릎 꿇고 추모하며 (0) | 2015.07.16 |
세계유산 논란 日쇼카손주쿠는 제국주의 이론의 산실 (0) | 2015.07.08 |
문화국가 백제의 꿈 .. 1400년 만에 인류의 보물되다 (0) | 2015.07.06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난설헌집' 표절 논란 (0) | 2015.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