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달마산 미황사
해남 달마산 미황사는 나에게도 많은 추억이 깃든 사찰이다.
언젠가 꼭 다시가서 아름다운 미황사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 했지만 이리 저리 생활에 쫒기다
보니 발길이 쉽게 닿지 못했다.
그런데 나와 똑깥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미황사에 대한 글을 올린 블로그가 있어 여기"펌"하여
올려 본다.
[펌한 블로그 내용]
1.
파란하늘 따사로운 볕...
움추진 마음만 탓하기엔 청명한 가을, 투명한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지금 이 순간 떠나지 않는다면 그나마 휴식도 또 다른 아쉬움으로만 남겠지?
햇살아 우리 나가자 !
짧은 추석연휴를 길게 즐기고 싶은 욕심에 투명한 하늘을 핑계 삼아 나들이에 나섰다.
색시, 미황사 가자 !
... ... 싫은데?!
왜???
지금까지 간직해온 그때 그 석양빛을 똑같이 보지 못한다면 다시는 안 가게 될지도 모를 거 같아서...
<오늘은 해남 달마산 미황사로 떠난다... 얼마만의 나들이인가...>
<달마대사가 마지막 머물렀다고 해서 달마산이 되었지?^^ 달마대사라면 백제의 동성왕-성왕이나 위덕왕때 사람인데, 미황사 사적비의 출발은 신라의 경덕왕(역시, 또 경덕왕이다...ㅋㅋ) 때고, 건축은 임진왜란(조일전쟁) 이후다... 풍요롭고 낮은 곳에 위치한 것을 보면 경덕왕 전후가 맞을 거 같고, 부도밭에서의 흔적을 보면 조선중기 이후에 번창하지 않았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아~~~
너무나 좋았다는 추억이, 때로는 다시 보고 싶다는 욕망을 제어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싶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일까? 감성의 차이일까? 아니면 추억을 저장하는 방법의 차이일까?
나는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빛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오늘, 오늘이 안 되면 내일, 내일이 안 되면 될 때까지 다시 가서라도 그때보다 더 좋은 - 맘에 드는,
혹은 완벽한 광경을 볼 때까지 가겠다는 마음뿐인데, 색시는 오늘 실망할지 모른다는 걱정, 그럼으로 인해 과거의 추억까지 지워질지 모름을 우려하고 있다.
<색시는 추억을 먹고 살고, 나는 아직 미래의 꿈을 먹고 사나?^^
2.
96년이었을까? 97년이었을까? 나는 97년 정초로 기억하는데 색시는 자꾸 16년만이라고 말한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끼고서 계획한 남도답사 1번지 코스...
강진으로 해남으로 길거리에서 라면 끓여 먹어가며 역사다, 문화다, 예술이다, 사상이다 주절거리며 아마 그 여정의 말미에 만났던 곳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석양빛을 가진, 아름다운 인생의 황혼을 생각한다면 한번쯤은 미리서 봐두고 싶은 석양을 간직하고 있다는 미황사”였다.
<97년 1월의 미황사... 대웅보전 앞마당엔 석등도 있고, 석조도 있고, 그때의 대웅보전 진입계단과 석단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97년 그 때, 그 빛은 대웅보전도 석축도, 달마산도 그렇게 풍요롭게 물들었었지...>
<한없이 곱게만 느껴지는 푸근하고 따사롭고 평화로운 빛깔... 우리들 황혼이 그런 색으로만 물들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정말 아름다운 색이다...>
떨어지는 해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줘~~~라고 외치며 아슬아슬 도착했던 미황사...
그 겨울에 만난 땅끝마을 해남과 진도 앞바다는 금빛으로 물들었고,
미황사의 대웅전도 달마산과 함께 붉은 석양빛에 불타올랐었지...
그후 나는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울 美(미)란 글자가 들어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유일한 절...
황금(黃)빛으로 물드는 석양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꿈꾸려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봐야할 절(寺)...
채색되지 않음으로 인해 물들고, 채워지지 않아 더 꽉 참을 느끼려면 미황사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97년 1월의 땅끝, 미황사 앞바다에서... 사진은 때로 나의 기억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이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바다는 이렇게 주홍빛으로 불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감동과 감흥이 있었음에도 16년이란 짧지 않은 공백이 있었음에 깜짝 놀란다.
그래~ 수십년을 살아간다면서, 좁은 땅떵어리라 우기면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라고 여유를 부리지만, 정작 우리들은 봤고, 했고, 약속했던 것들을 얼마나 자주(!) 다시(!) 정말(!)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을까?
바로 곁에 두고서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나, 늘 그리워하면서 다시 채우기 힘든 게 우리들 삶이 아닐까?
오늘도 석양 시간에 맞춘다는 핑계로 대부분(!) 필름을 나주에서 소비하고 미황사로, 미황사로 향한다.
<나주객사 금성관... 나주에 그렇게 많이 들락거리면서도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고도 나주를 보았다?!... 금성관도 보고, 나주 동문도 보고, 당간지주, 나주향교, 목사내아, 남고문, 정수루까지... 충실한 복원은 우리의 상상력을 살찌우는 멋진 계기가 된다고 확신하게 됐다...>
<산만해 보이지만, 대웅보전 앞마당은 그럴 수없이 넉넉하고 평화롭다... 맨 오른쪽 부도밭과 그곳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좋다는데...>
<대웅보전에 가려져 제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응진당... 건실하면서도 참하게 생긴 건물이다... 어쩌면 꽉차고 포장되어 있어 응진당은 잊혀지고, 충분히 닳아지고 빛이 바래 대웅보전은 더 부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석양을 보기 위해 대웅보전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를 찾게 된다... 대웅보전 왼편의 삼성각이나, 오른편의 응진당쪽... 나는 응진당쪽을 더 좋아한다...^^>
3.
훨씬 넓어진 길들... 나주에서 놀다가 영암을 거쳐, 강진을 비켜나, 해남을 통해 땅끝으로 향하는 길...
너른 평야를 지나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변화무쌍해지지만 남도길은 여전히 정겹고 평화롭기만 하다.
월출산엔 무위사랑 도갑사 월남사지가, 만덕산엔 다산초당이랑 천일각 백련사, 두륜산엔 대흥사가 있고...
씽씽 뚫린 길들을 밟으면서 기억의 저장고를 들춰내 하나하나 이야기꺼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들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관심이 있건 없건, 언제고 그들의 감성에 따스함만 깃든다면~ 하고 말이다.
아무튼~~~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고,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다고 김수근씨가 말했었지?
역시 사람이 살아갈 길은 좁을수록 좋고, 자동차를 위한 길은 넓을수록 좋은 게 분명하다.
<금산사 미륵전... 미황사 대웅전은 서향이다... 이처럼 서향으로 배치된 주불전은 쌍계사 대웅전, 금산사 미륵전처럼 몇 되지 않는다... 이런 곳들은 그 볕이 들때 제대로 된 색감과 질감을 드러내게 된다...>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에 미황사 오르는 길은 우회전인데, 네비양이 가르키는 노선은 좌회전이다.
크흐~ 석양빛을 바라보는 미황사는 달마산의 서쪽, 서향임에도 나는 머릿속에 각인된 지도만 추종한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에 쉽게 현혹되고, 잘못된 정보도 한번 입력되면 얼른 수정하지 못하나 보다. 조금만 차분히, 합리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될 일에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 똥인지 된장인지, 바닷물도 짠지 안짠지 먹어보고서야 인정할 때가 많다.
<미황사 위치... 백두대간 성주 영취산에서 갈라져, 마이산 서북쪽 진안 주화산에서 시작하는 호남정맥은 내장산 - 무등산을 거쳐, 월출산을 비켜내려와 장흥 사자산에서 꺾여 조계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에서 끝난다... 어쩌면 월출산에서 떨어져 나와 두륜산을 거쳐 남해바다로 뻗어내린 달마산 자락은 백두대간-호남정맥의 마지막 여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미황사에 다가서며 하늘도 다시보고 구름도 다시본다. 그 때, 그 빛을 오늘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요즘은 절이 많이 커져서 템플스테이도 하고, 중축도 많이 했다는데 혹시 배치는 달라진 게 아닐까?
오늘은 그 때 못봤던 부도밭도 찾아보고, 주춧돌에 새겨진 거북이랑 꽃게도 찾아보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달마산 3부 능선쯤 나지막히 자리잡아 그럴 수 없이 정겨운 진입로도 걷고 싶고...
늘 십수년전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미황사의 잔상들을 끌어내며 기대반 우려반, 몇통 안남은 필름을 챙긴다.
<97년 1월의 대웅보전... 그때를 회상하는 내 마음에 대웅전은 이 사진보다 더 붉게 불타올랐을 거 같다...^^
그리고 자세히보면 대웅보전의 처마선은 찐따가 져있다... 바라보는 왼쪽보다 오른쪽이 훨씬 높게 들렸다는 말이다...ㅋㅋ 그래서 미황사를 바라보는 제일 편안한 시선은, 대웅보전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할 때다...
어쩌면 달마산 바위들을 향해 시선을 유도하기 위했다 싶을 정도로 확연하게 차이를 두었는데, 목공의 실수라기보다 의도적인 장치가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실수마저 변명해주고 감싸앉는 여린(?)마음의 소유자여서 그렇게 느끼는걸까?? ㅎㅎ >
<정면에서는 균형이 깨질거 같지만, 막상 오른쪽에서 본다고 대웅보전이 뒤틀리지는 않는다...^^>
4.
달마산~~~
두륜산 정상에서 남해를 향해 직선으로 내려뻗어 바다를 향한 곧은 의지를 옹골찬 기세로 과시하며 미황사를 당당하게 호위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웅혼한 기상이 강에 막히고 바다에 이르러 더 나아갈 수 없는 아쉬움 때문에 때로는 크고 작게, 때로는 높고 낮은 조화를 이뤄가며 병풍처럼 미황사를 감싸 안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울쑥불쑥 솟아오른 달마산 기암괴석은 넉넉한 앞마당과 부드럽게 바다를 향한 조망과 어우러져 미황사 대웅전을 토해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달마산이 호위하고 있는지, 달마산이 뺃어 냈는지... 물론 사진보다 달마산은 훨씬 가까이 보인다...^^>
<대웅보전 오른편 공양간... 이 뒤로 짙은 상록수림에 묻힌 부도밭이 있다...>
때로는 옹골차게, 때로는 경쾌하게, 짙은 활엽의 상록수들과 어우러진 바위들이, 인간이 가미한 최소한의 공간경영으로 그대로 자연속으로 녹아드는 風景(풍경)...
우람하지도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외소하거나 초라하지 않는 미황사 대웅전은 달마산과 바다를 하나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저보다 더 높이 자리잡았다면, 저보다 더 크게 만들어졌다면 놓쳐야 했을 많은 것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 깊이가 있어, 그런 안목이 있어 우리들은 미황사를 노래하며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인생을 돌이켜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게 아니겠는가...
<누구나 미황사 대웅보전에 서면 자연스레 먼 바다의 석양을 바라보고 가르킨다... 그것이 감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미황사 석양 속에서 또다른 울림을 만났다... 33천은 그렇게 내 마음에 각인됐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수놓는 변화무쌍한 구름의 향연은 미황사의 빛을 풍부하게 물들이고,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 이파리를 스쳐지나가는 가을바람은 달마산에 경쾌한 생기를 불어넣고,
구름속을 넘나들며 주홍빛,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진도앞바다는 우리들 마음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텅빈듯 꽉찬듯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을 평화롭게 수놓고 있다.
그대로 있음으로 인해 채워지는 많은 것들, 꽉차있어 비워지는 많은 것들을 미황사에서 나는 만난다.
<탑돌이처럼 종소리에 맞춰 대웅보전을 돌고 도는 저 스님의 마음엔 무엇이 비워지고 무엇이 채워질까?>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법규와 형식, 그리고 절차를 따르는 몸이 고행스러워야 할지도...>
5.
높지 않은 곳에, 바위산과 함께 어우러진 절집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육지의 70%가 산이라지만, 지리산 같은 육산이 대부분이고 설악산 같은 악산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신라말 구산선문과 고려중기의 선종이 대세를 이루면서 전통으로 자리잡은 산지가람이 우리나라 절집의 대부분이라지만, 그들이 의지하는 主山(주산)을 절집 금당 앞마당에서 조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숭유억불 정책과 유생들의 파괴대상으로 전락한 절집들이 산속깊이 유폐 되다시피한 조선조에 만들어진 산사들은 산속으로 산위로, 더 깊이깊이 숨어버려 主峰(주봉)을 배경으로 가람을 배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석사는 태백산을 볼 수 있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게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시원한 산하가 있어 한없이 넓고 깊어진다...>
다만 우리들이 기억하는 산사의 장쾌한 조망이란 부석사나 수종사처럼 주불전이 바라보는 방향, 즉 주산이 굽어보는 반대편 전망에 의지하기 십상이다. 정작 불국사에서는 토함산이 보이지 않고, 화엄사에서는 천왕봉이 보이지 않고, 부석사에서는 태백산을 바라볼 수 없다. 산은 그 산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그 넉넉한 품을 허용하고, 그 산이 포괄하는 너른 범주를 보일뿐 자신의 모든 것을 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산에 명사 하나, 어느 산이든 하나쯤 있어 터주대감을 자처하는 절집들도 실은 그 산에 존재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그 산의 이름에 의지할 뿐, 그 산(!) 존재자체를 인위적으로 끌어안기란 애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영취산 통도사... 그 품에 살짝 안겨 있어 통도사는 영취산을 통(通)으로 점유할 수 있었다...>
다만 백제, 신라, 고려시대부터 자리잡은 초기의 가람에서는, 멀리서나마 차경으로 주산의 호위를 받는 절집들을 찾을 수 있는데, 덕숭산 수덕사, 미륵산 미륵사지, 영취산의 통도사,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 가지산 보림사, 조계산 송광사, 호거산 운문사, 도솔산 선암사, 두륜산 대흥사 등이 그렇고, 또한 그런 이유로 산사에서 그 절이 의지하는 主山(주산)과 主峰(주봉)을 함께 감상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호거산 운문사... 주변 산세에 분지처럼 자리잡은 운문사... 운문사에서 느끼는 생동감과 경쾌함은 주변을 빙 두른 호거산의 높고 낮고, 거칠고 부드러운 운율에 자연스럽게 조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초기의 가람들은 대개 主山(주산)의 초입에 위치하거나 높아도 3~4부 능선을 벗어나지 않은 나지막한 곳에 자리잡게 마련이고, 또 그런 이유로 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우리에게 자연의 품에 안기듯 안정되고 푸근한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떨어져 있거나 경계에 있어 오히려 전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지혜를 선인들은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겠지.
<희양산 봉암사... 우리들이 흔히 산사에서 기대하는 조망은 이처럼 산하에 아늑하게 갇혀 있는 폐쇄성, 그로인해 속세로부터 벗어난다는 차단감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처럼 도심에서 접하기 힘든 들과 강과 바다에 묻히고 싶어 하는지도... 미황사에서...>
<선림원지... 왼편의 부도와 가운데 희미하게 삼층석탑이 보이시는지...^^ 어쩌면 이렇게 고립된 적막감, 관계에서 단절돼야만 평화로운 자아(自我)와 자유를 찾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관계의 차단이 순수한 존재의 본질은 아닐텐데도 말이다...>
아무튼~ 여기에 기암괴석, 바위산을 배경으로 주불전이 자리잡아 자신의 존재를 웅변하는 절집들이 가끔 있어 우리마음을 설레게 만드는데 그런 곳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문경 봉암사, 부안 개암사, 남해 보리암, 진안 탑사 등과, 우리에게 폐사지로 이름 있는 합천 영암사지나 성주 법수사지 정도가 아닐까싶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절묘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절집이 합천 청량사와 이곳, 해남 미황사고...
<희양산 봉암사 금색전... 묻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런지, 의지한다는 표현이 맞을런지... 이처럼 육지의 동쪽의 악산들은 선이 굵고 볼륨감이 크다...>
6.
융기와 침식이 고르게 분포한 한반도의 지질형성을 보면, 동쪽은 융기, 서쪽은 침식작용이 주요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경은 융기와 침식이 동시에 일어난 곳일 경우가 많다. 그중 악산이라 할 수 있는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등 동쪽의 바위산들은 선이 굵고 불륨이 크며 거칠다. 이에 반해 서쪽의 북한산, 수리산, 계룡산, 대둔산, 월출산 등등은 훨씬 부드럽고 오밀조밀하며 다양한 변화를 갖추게 된다.
<미황사 가는 길에 만나는 월출산... 그렇다고 서쪽의 악산들이 낮고 여린 건 아니다... 너른 평야에 우뚝 솟아오른 그 기세만으로 충분히 장중하고 견고한 위엄을 갖추고 있는 것도 사실...>
이런 이유로 동쪽에 위치한 청량사, 봉암사, 영암사지, 법수사지 배경이 되는 매화산, 희양산, 황매산, 가야산은 높고 거친 바위산들이 옹골차고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면, 서쪽에 위치한 개암사, 탑사의 배경이 되는 울금바위, 마이산은 선이 부드럽고, 바다 가까이 위치한 보리암의 금산과 달마산 미황사 바위들은 적절한 변화와 굴곡으로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개암사 대웅보전과 내소산 울금바위... 부드럽고 위압적이지 않게, 편안하면서 포근하게 조화를 이룬다...>
먼저 동쪽부터 생각하면 봉암사 금색전 뒤로 희양산의 범접할 수 없는 신령스런 기운에서 위엄을 느끼고,
한손에 잡을 수 없는 가야산의 장중함 때문에 법수사지탑에서는 아래쪽 넉넉한 조망으로 눈을 돌리게 되며,
거칠고 우람한 황매산이 버티고 있기에 영암사지 석등과 석탑에서는 오히려 단아하고 참신한 반전을 즐긴다.
<황매산 영암사지(↑)와 가야산 법수사지(↓)... 황매산이 더 우람하고 거칠게 솟아 있지만,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는 가야산이 몇 수 위일듯... 똑같은 폐사지에 악산을 배경으로 건실하게 자리잡은 삼층석탑이 단아하지만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단, 넓고 먼 조망을 갖춘 법수사지탑이 건실한 영암사지탑에 비해 훨씬 경쾌하고 화려하다..>
그렇지만 울금바위에 어우러진 개암사 대웅보전을 볼 때는 그럴 수 없이 아늑한 기분에 눈을 감게 되고,
울퉁불퉁 오밀조밀 짜맞춰진 금산 보리암에서는 다도해와 조화를 이룬 변화무쌍한 조망에 생기가 솟는다.
동쪽과 서쪽, 융기와 침식, 경상도와 전라도, 육지와 바다... 뭐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게 아닐런지.
<이런 악산들도 바다에 가까워지면 훨씬 작고 다양한 형태로 솟거나 깎여 있다... 금산 보리암...>
<미황사 달마전보다는 만하당 쪽인듯... 400여 m 높이의 달마산... 올라보고싶지?>
기세등등 거칠게 솟은 매화산을 배경으로, 담을 수 있을만큼만 열려 있는 청량사에서는 그럴 수 없는 상큼한 감동이 있고, 오밀조밀 다양하게 펼쳐진 달마산 바위를 배경으로 낮고 넓게 열린 미황사에서는 그럴 수 없는 평화로운 감상에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되지.
<매화산 청량사와 달마산 미황사... 극적으로 상반된 두 절집에서 나는 비슷한 상큼함에 젖어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유형 중 동쪽과 육지를 대표하는 절집으로 합천 매화산 청량사를,
서쪽 바다를 대표하는 절집으로 해남 달마산 미황사를 꼽는다.
<악산에 석축... 청량사는 그 높이만큼 훨씬 극적이고, 미황사는 낮은만큼 평화롭다...>
이런 곳,
부석사/수종사처럼 높지 않아 극적이지 않지만, 금산사/법주사처럼 넓지 않아 위압감이 없고,
통도사/선암사처럼 복잡하지 않아 단순 담백하지만, 무량사/보림사처럼 허허롭지 않고,
해인사처럼 닫혀있지 않아 답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국사 회랑에 갇힌 것처럼 차분해질 수 없는 곳...
선림원지처럼 계곡의 바람은 없지만 생동감이 넘치면서, 거돈사지와 반대로 트여있어 평화롭고,
운문사처럼 꽉 차있지 않지만 운율이 살아있고, 실상사처럼 적당히 열려있어 그럴 수 없이 호젓한 곳...
그런 복잡다단한 변화와 마음의 울림을 찾고자 먼길을 나설 마음만 있다면 바로 그곳이 미황사가 아닐까?!
<구름의 변화는 다양한 색감으로 대웅보전을 채색한다...>
<빛과 시간은 모든 걸 퇴색시키지만, 빛이 있어 선이 살아나고 색이 길들여진다... 그리고 살아있던 시간보다 더 긴 여운을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비워 있다면 말이다...>
7.
무엇을 위해 종을 울려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지 한참 되묻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나는 상대방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이다.
발전, 성장, 확대, 외향, 복잡함... 덧셈이 없으면 퇴보하고 패배가 되고, 결핍에 견딜 수 없는 우리 생활.
이러다 더 많은 것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고, 이러다 쉽게 지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또 그렇게 축소되고 좁아지며 낮아지다 포기해야할 많은 것들에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속도의 시대.
그래서 우리는 놓치고 있는 감수성과 품위를 안타까워하면서, 느림과 휴식, 뒤돌아보기를 위해 떠나겠지.
<대웅보전 양옆으로 짙은 상록수림이 있어 정말 시원한 바람소리를 만들어낸다... 달마산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풍금소리처럼...>
<명품에는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유홍준씨가 말했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 그 큰 그림에 숨은 작은 디테일들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든다... 그 이야기들이 있어 우리의 여행과 답사는 풍요로워지는 것이고...>
큰 가치에 매몰된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려 안간힘 쓰면서 우리는 또다시 비움과 채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꾸 비워야한다는 말은, 비우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채운다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자꾸 되내이지만, 그것엔 욕망이 있고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있기에 포기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비우는 것은 늘 현재가 되고, 채우는 것은 항상 미래가 될 수밖에 없을까?
잠깐의 떠남, 휴식, 여행에서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분노를 나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마음을 조아린다.
<달마산에서 내려다본 남해... 솔아님 블로그에서 스크랩해, 두장의 사진을 이어 붙였다... 나는 아직 그곳에 올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십수년만에 다시 선 미황사에서 나는 그런 마음을 풀어보고 있다.
비바람에 닳고 닳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대웅전 기둥을 보면서 비워진 마음의 결을 쓰다듬고 있다.
제멋대로 생긴 주춧돌에 또 그렇게 멋대로 새겨 넣은 게와 거북이 조각들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거칠지 않아 경쾌하고, 반듯하지 않아 자유스러운 달마산 바위들을 보면서 기분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낮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물들이는 금빛 석양을 보면서 잔잔한 평화와 차분한 감동에 맘을 열고 있다.
<민흘림에 가까운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대웅보전 기둥... 이 결이 왜그리 참하고 견실하며 믿음직스러운지... 그 결들이 살아있어 대웅보전은 더 깊이 우리에게 각인된다... 아련하고 그립고, 부드럽게...>
<멋대로 생긴 주춧돌에 새겨진 꽃게... 저 먼 바다에서 올라왔는지, 바다를 향해 기어내려 가는지...>
8.
세상은 덧셈과 뺄셈이 함께 있어 어울리는 것인데...
삶이란 전진과 후퇴가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들 인생이나 관계란 늘 채움과 비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채워지고(↓) 비워지고(↑)??^^ 빛에 따라서도 대웅보전은 그렇게 다른 색감으로 다가온다...>
미황사는 달마산 자락을 꽉 채워서 벅찬게 아니다.
그렇다고 미황사가 바다를 향해 텅 비어있어서 감동적인 것도 아니다.
대웅전은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어 화려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대웅전이 애초부터 화려한 문양과 다양한 그림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미황사는 십수년 사이 많은 것들이 새로 생기고 또 그렇게 하나둘씩 넓혀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황사는 그대로 있어야 할 것과 채워지는 것들이 서로를 조금씩 비켜나가면서 변하고 있다.
<빗물에 씻겨나고, 바람에 닳아지고, 햇볕에 바랜 대웅보전 목재들...
그렇게 속살을 드러낸 공포와 기둥과 문살은 다시 석양빛을 받아 화려하게 채색된다.
아니 바람과 빛을 받아 금빛으로 물든다...
주고 받음이 아니라 그렇게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되고 서로를 빛내고...
숨기지 않아 모든 걸 줄 수 있고, 또 그대로 있어 모든 걸 받을 수 있는...
그렇게 편안하고 너그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는 햇빛을 향해 비워지고 열려 있는 대웅보전.
대웅보전과 석양과 달마산의 멋들어진 레시피가 만들어낸 미황사...
아름답다는 말이외에 어떤 수식이 필요할까...>
<대웅보전 기둥들이 토해내는 또 다른 금빛... 오늘 하루 석양빛에 반사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수백년 묵은 석양빛이 토해낸 고귀함일지도...>
비워져 있어서 채워지는 많은 것들...
그대로 있음으로 인해 채워질 수 있는 많은 것들...
인위적으로 꽉 채워 포장하지 않아 물들고 변하고 채워지는 많은 것들을 미황사는 보여주고 있다.
노출은 품위로, 여백은 너그러움으로, 비움은 변화로 그렇게 다가온다.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넉넉한 품과 높은 격을 갖춘 우아함으로,
낮은데를 향해 비워지는 평화로움으로, 열림으로 인해 채워지는 충만함으로...
<대웅보전 내부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애초에 대웅보전의 외부 단청도 이렇게 화려했으리라... 그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안다면 우리의 답사여행은 훨씬 풍족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거북이는 바다에서 올라왔겠다...^^>
<대웅보전 주춧돌이라고 앞쪽 주춧돌처럼 흥겨운 손놀림으로 모두가 다듬어져 있는 건 아니다... 이처럼 측면의 주춧돌은 아예 자연 암반을 그대로 살려 놓았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움을, 인위적 가공을 최소화한, 그리고 가미하는 인간의 공력에는 해학을 남기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9.
나는 오늘 미황사를 다 보지 않았다.
미황사를 오르는 정겨운 진입로를 걷지도 않았고,
대나무,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들이 어우러진 활엽 상록수들에 안긴 숲길도 걷지 못했고,
부도밭에 새겨진 다양하고 유쾌한 문양들을 찾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두 번의 만남이 오버랩 되면서 조금 더 완결되고, 조금 더 아름다운 미황사를 그리게 되었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멀리... 달마산과 대웅보전을 즐기려면 그 미묘한 차이까지 즐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황사는 대웅보전이 있어 아름다워지며,
대웅보전은 단청으로 채색 되지 않아 완성된 게 아닐까?...
세월을 역류하려 하지 않고,
바람을 피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부동의 평상 그대로...
그래서 더욱 건강하고, 그래서 더욱 화려하며,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워지는...
비움과 채움마저 초월해 언제고 석양빛과 함께 찬란하게 산화할 그 날만을 기다리는듯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은 그렇게 석양을 향해 온 몸을 열어 놓았다.
수백년 동안 스며든 햇빛을 다 토해낼 때까지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햇빛에 산산이 바스러질 때까지...>
그러나 나는 여전히 모든 걸 채우지 않았음을 아쉬워할지 모른다.
그래서 내게 미황사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와 갈증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고,
다음에 찾을 때가 되서야 내 마음이 그리는 그런 미황사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때는 미황사 대웅보전이 토해 낼 수백년 묵은 석양빛을 볼 수 있겠지?!!
그 기다림이 있어 벅차고 또 그래서 그립다.
<미황사에서 바라다보는 남해바다...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는 석양...>
저무는 태양에 금빛 석양이 물든다.
하늘을 물들이고,
바다를 물들이고,
대웅보전을 물들이고,
당신의 얼굴과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물들이고,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물들인다.
금빛으로...
<꼭 그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채워진다... 비워 놓은 만큼만...>
<미황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려면 동지때가 제일 좋치 않을까? 깊고, 넓게... 비운다 비운다면서 나는 여전히 완성과 완결,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
<미황사에서 돌아오는 길, 달마산 위로 떠오른 보름달. 손을 붙잡고 함께 빌었다... 그렇게 비워지고 채워지고...>
<글을 훑어 본 색시가 한마디 한다... 미황사 달마산에서 봤던 추석 보름달은 노란 게 아니라 하얬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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