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7-27
트럼프는 21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선시티에서 열린 유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에 수십억 달러를 벌면서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 군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한 뒤 “한국도 그렇다. 그들은 (미국에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 간다. 한국은 미쳤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가인 트럼프가 한미 안보 동맹을 잘 모르고 내놓은 발언인 것임에 분명하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분담금으로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주장을 그저 광기 어린 ‘독설 퍼레이드’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단적인 예로 올해 발효 3주년을 맞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선 한미 무역 역조를 거론하며 “미국이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는 250억 달러(약 29조3000억 원)로 FTA 발효 전인 2011년보다 115%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 수출은 2011년보다 9% 증가한 반면 수입은 13% 늘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이슈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을 앞두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협정에 필수적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과 TPP를 추진하면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최근엔 지한파로 분류되는 공화당 로버트 돌드 하원의원조차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비공개 서한을 보내 한미 기업 간 공정 경쟁을 위해 미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돌드 의원은 지난달 26일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한국 대기업들에만 유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어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렵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공정위는 올 4월 미국의 간판 정보기술(IT) 기업인 오러클, 퀄컴 등이 ‘제품 끼워 팔기’를 해왔다며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가 히스패닉 비하 발언 등에도 공화당 경선 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 백인 주류 계층이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건드리며 보수층에 대리 만족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미쳤다” 발언이 미국에선 반론에 부닥치지 않은 것도 이런 정서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 “중국과 인도로부터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 ‘일자리 창출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하며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트럼프의 발언과 미국의 분위기를 접하며 한미 관계가 마냥 ‘한줄기 빛도 샐 틈이 없는 굳건한 동맹’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어디서든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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