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정동칼럼]미·중 사이 선택, 진영을 넘는 외교

바람아님 2015. 8. 7. 08:46

경향신문 2015-8-6

 

크로스파이어(crossfire)는 군사용어로 앞뒤 또는 양옆에서 교차 발사하는 포탄을 말하는데, 미·중 사이 한반도가 그런 모양새다. 최근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2011년 당시 국무장관 클린턴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으로 소개한 이후 담론적 원칙만 있고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용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7월3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태평양사령부 예하 병력은 24만4000명에서 26만6000명으로, 해병대 항공기는 416대에서 630대로, 해군 항공기는 1056대에서 1111대로 각각 증가했다. 또한 일본에 구축함 두 척, 호주에는 해병대 부대를 창설해 115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 향한다는 거창한 전략으로 부르기엔 어색하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최근 미국 경제가 호전되고 있지만 예산 자동삭감 조치, 즉 시퀘스트를 겪었을 정도로 재정이 나쁜 상태에서 군비증강을 적극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고, 역사상 세력 전이가 발생했을 때 패권 충돌의 가능성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아직 대중 봉쇄로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 현재의 미·중관계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과 독일이나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을 워싱턴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확실히 속도를 내고 있다. 첫 번째 걸림돌이었던 재정 문제는 일본에의 아웃소싱이 효과를 발휘하는데, 핵심 추진체가 지난 4월 말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개정에 합의한 미·일안보 가이드라인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미국이 보장하면서 중국 견제의 선봉을 맡긴 것이다. 집단자위권에 대한 국제 제약은 안보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풀고, 국내 제한을 풀기 위해 중의원에서 안보법 개정을 강행처리했다. 참의원 통과가 남았고, 일본 내 반대가 예상보다 크지만 아베는 거침이 없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이 봉쇄와 포용의 양면전략의 근간을 당분간 유지하겠지만 무게 중심은 봉쇄로 경도되고 있다. 중국의 진정한 의도를 탐색하면서 경고도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가 서로의 의도를 시험하는 ‘간보기’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공식별구역, 사드 배치, 집단자위권 허용, 그리고 남중국해에 대한 한국 역할론 등이 바로 그런 함의를 가지며, 앞으로도 유사 사례들이 반복·심화될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지난 7년 반 동안 한반도 운명과 관련된 4가지 핵심 변수가 변해왔다. 첫째, 한·미동맹의 근본 성격이 대북 억지에서 동북아지역군화해 왔는데, 전략적 유연성의 확대는 물론이고 한·미·일 3각 군사협력 구축으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하부구조로 편입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미국은 3각 협력 구축을 추진하다가 한·일관계 악화로 차질이 생기자 미·일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는 길을 택했다. 둘째, 북핵 문제의 근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즉, 핵문제 해결보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셋째로는 한반도 통일론의 변화로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통일대박, 드레스덴 선언 등의 많은 제안들은 후속조치도 없이 동력을 잃고 ‘암묵적 흡수통일론’의 은폐용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진영대결 구조가, 아직 신냉전이라고 확언하기엔 이르지만 북·중·러와 한·미·일의 경계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예상되는 엄청난 파국적 상황 때문에 미·중이 직접 충돌하기 어렵다는 점은 그래도 안심이지만, 탐색전으로 양쪽의 크로스파이어에 우리가 다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의 선택이 양쪽 진영의 크로스파이어에 갇혀서는 안 되며, 진영을 넘는 크로스오버(crossover)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진영을 넘는 외교로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효과 있는 크로스오버의 대상은 북한이고, 다음은 중국이며, 또 러시아다.

 

하지만 최대 걸림돌은 동북아 역내 국가의 리더십들이 대부분 진영대결 구조를 자양분 삼아 권력을 강화하려는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여당 대표까지 스스로 배타적 선택의 덫, 크로스파이어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 행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권력 때문이다. 정치꾼들의 정략 때문에 국익이 위태로워지고, 아시아의 평화가 흔들린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