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8.15
우표로 본 광복 70년
1946년 발행 땐 국호 ‘해방조선’
6·25 땐 인쇄공장 모자라 펜글씨로
70~80년대 개발·세계화 주로 담아
2000년 이후 파격 디자인 선보여
우표 한 장에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1954년 9월, 일본 정부는 총리 주재 각의(閣議)를 열고 한국의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 수령을 거부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우편물이 반송됐다. 이처럼 일본은 그해 발행된 독도 우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후 2002년 독도 우표가 재발행될 때까지 48년이 걸렸다. 우표 수집가들이 만든 사단법인 한국우취(郵趣)연합의 라제안 회장은 “일본 정부가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골라 반송시킨 것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라며 “당시 발행된 우표는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표의 힘을 보여준 54년 독도 우표는 2·5·10환(당시 화폐 단위) 세 종류로 200만 장이 발행됐는데 요즘엔 1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우표는 역사를 기록한 일종의 ‘사기(史記)’다. 45년 광복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70년사는 모두 우표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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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첫 기념 우표는 46년 5월 1일 발행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일본식 표기법에 따라 ‘선조방해(해방조선)’라고 적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흐리고 거칠지만 태극 문양은 뚜렷하다. 다만 우표엔 국호 ‘대한민국’은 적혀 있지 않았다. 48년 5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발행된 우표에도 조선이라 적혀 있다. ‘대한민국’이 우표에 사용되기 시작한 건 48년 8월이다. 그해 7월 12일 헌법이 제정되고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발행되기 시작한 대통령 취임 우표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을 담은 취임 우표는 총 4종이 발행됐다. 라제안 회장은 “미국을 제외한 유럽·동남아 등에서도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가 발행된다”고 설명했다.
51년 한국전쟁 발발로 국토가 전란에 휩싸인 혼란 중에도 우표는 발행됐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전시 우표엔 미국과 한국의 국기가 나란히 그려졌다. 인쇄 시설이 부족해 ‘대한민국 우표’라는 펜글씨를 아래에 급하게 적어 넣은 흔적도 보인다.
우표에선 한국 현대사의 단면도 읽힌다. 61년 4월 우체국(현 우정사업본부)은 ‘4월 혁명 제1주년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우체국은 그해 6월 ‘5·16 군사혁명 기념’ 우표를 찍었다. 두 달 차이를 두고 성격이 전혀 다른 ‘혁명’ 기념 우표가 발행된 것이다. 우표 액면가는 40환으로 같지만 어깨동무를 한 시위대와 횃불을 들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우표에서 단기(檀紀·단군기원)가 사라진 건 63년 무렵이다. 61년 법 개정에 따라 미터법과 서기(西紀·서력기원)가 도입됐지만 우표에선 2년 넘게 단기가 사용됐다. 70년대 우표는 개발의 상징물로 채워졌다.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서울~부산 고속도로 준공, 지하철 1호선 착공,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준공이 차례로 등장한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77년)과 한국종합전시장 개장(79년)은 그 정점에 있다.
이에 비해 8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계 속 한국’이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에 맞춰 기념 우표가 발행됐고, 88 서울올림픽 때 기념 우표 300만 장을 찍었다. 민주화가 이끌어 낸 87년 헌법 개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졌다. 93년 열린 대전엑스포는 전 국민의 행사가 됐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통일의 새싹을 틔웠다.
2000년 이후 우표의 변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e메일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우표 발행량은 급격히 줄었지만 우표 디자인은 오히려 다양해졌다. 50년 이상 고집해 온 사각형에서 벗어나 마름모·원형 등 파격적인 디자인이 등장했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를 담은 우표(2011년)까지 나왔다.
우정사업본부 신재용 디자이너는 “캐릭터 우표의 등장은 인물·상징물 위주의 디자인 개념을 뛰어넘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디지털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스티커 우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4일 발행한 기념 우표는 스티커 형태의 ‘영원(永遠) 우표’로 제작됐다. 물가 상승 등으로 배송요금이 변화하더라도 이를 붙이면 우편물을 보낼 수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S BOX] 전 세계 딱 한 장 ‘가이아나 우표’ 97억원 … 국내 최고가는 1600만원
전 세계에 단 한 장뿐인 ‘가이아나 우표’(사진 왼쪽)는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 97억원에 팔렸다. 영국이 1856년 남미 가이아나에서 전쟁을 치렀을 때 영국군이 발행했다. 이 우표는 현재 단 한 장 만 발견된 상태다.
단순 실수가 가격을 부풀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우표가 1918년 5월 18일 미국 최초로 발행된 항공우표 ‘뒤집힌 제니(Inverted Jenny)’다. 인쇄 과정에서 비행기가 거꾸로 뒤집힌 이 우표의 액면가는 24센트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15억원을 호가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우표는 1900년 발행된 ‘일자첨쇄우표’다. 신문 배달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감정가가 1600만원이다. 국내에 여러 장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비싼 우표는 ‘문위우표’(감정가 900만원 수준)다. 1884년 11월 발행 당시 화폐 단위인 문(文)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국내와 국외를 포함해 20여 장이 있다. 이 우표는 불운을 겪었다. 우정국에서 시작된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우편사업이 중단됐고, 발행 3주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내 우표 중 액면가가 가장 높은 것은 1984년 세계우표전시회 기념 우표(5000원·사진 오른쪽). 현재 수집가들 사이에서 6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우표는 역사를 기록한 일종의 ‘사기(史記)’다. 45년 광복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70년사는 모두 우표에 담겨 있다.
광복 이후 첫 기념 우표는 46년 5월 1일 발행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일본식 표기법에 따라 ‘선조방해(해방조선)’라고 적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흐리고 거칠지만 태극 문양은 뚜렷하다. 다만 우표엔 국호 ‘대한민국’은 적혀 있지 않았다. 48년 5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발행된 우표에도 조선이라 적혀 있다. ‘대한민국’이 우표에 사용되기 시작한 건 48년 8월이다. 그해 7월 12일 헌법이 제정되고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발행되기 시작한 대통령 취임 우표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을 담은 취임 우표는 총 4종이 발행됐다. 라제안 회장은 “미국을 제외한 유럽·동남아 등에서도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가 발행된다”고 설명했다.
51년 한국전쟁 발발로 국토가 전란에 휩싸인 혼란 중에도 우표는 발행됐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전시 우표엔 미국과 한국의 국기가 나란히 그려졌다. 인쇄 시설이 부족해 ‘대한민국 우표’라는 펜글씨를 아래에 급하게 적어 넣은 흔적도 보인다.
우표에선 한국 현대사의 단면도 읽힌다. 61년 4월 우체국(현 우정사업본부)은 ‘4월 혁명 제1주년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우체국은 그해 6월 ‘5·16 군사혁명 기념’ 우표를 찍었다. 두 달 차이를 두고 성격이 전혀 다른 ‘혁명’ 기념 우표가 발행된 것이다. 우표 액면가는 40환으로 같지만 어깨동무를 한 시위대와 횃불을 들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우표에서 단기(檀紀·단군기원)가 사라진 건 63년 무렵이다. 61년 법 개정에 따라 미터법과 서기(西紀·서력기원)가 도입됐지만 우표에선 2년 넘게 단기가 사용됐다. 70년대 우표는 개발의 상징물로 채워졌다.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서울~부산 고속도로 준공, 지하철 1호선 착공,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준공이 차례로 등장한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77년)과 한국종합전시장 개장(79년)은 그 정점에 있다.
이에 비해 8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계 속 한국’이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에 맞춰 기념 우표가 발행됐고, 88 서울올림픽 때 기념 우표 300만 장을 찍었다. 민주화가 이끌어 낸 87년 헌법 개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졌다. 93년 열린 대전엑스포는 전 국민의 행사가 됐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통일의 새싹을 틔웠다.
2000년 이후 우표의 변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e메일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우표 발행량은 급격히 줄었지만 우표 디자인은 오히려 다양해졌다. 50년 이상 고집해 온 사각형에서 벗어나 마름모·원형 등 파격적인 디자인이 등장했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를 담은 우표(2011년)까지 나왔다.
우정사업본부 신재용 디자이너는 “캐릭터 우표의 등장은 인물·상징물 위주의 디자인 개념을 뛰어넘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디지털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스티커 우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4일 발행한 기념 우표는 스티커 형태의 ‘영원(永遠) 우표’로 제작됐다. 물가 상승 등으로 배송요금이 변화하더라도 이를 붙이면 우편물을 보낼 수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S BOX] 전 세계 딱 한 장 ‘가이아나 우표’ 97억원 … 국내 최고가는 1600만원
단순 실수가 가격을 부풀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우표가 1918년 5월 18일 미국 최초로 발행된 항공우표 ‘뒤집힌 제니(Inverted Jenny)’다. 인쇄 과정에서 비행기가 거꾸로 뒤집힌 이 우표의 액면가는 24센트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15억원을 호가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우표는 1900년 발행된 ‘일자첨쇄우표’다. 신문 배달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감정가가 1600만원이다. 국내에 여러 장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비싼 우표는 ‘문위우표’(감정가 900만원 수준)다. 1884년 11월 발행 당시 화폐 단위인 문(文)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국내와 국외를 포함해 20여 장이 있다. 이 우표는 불운을 겪었다. 우정국에서 시작된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우편사업이 중단됐고, 발행 3주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내 우표 중 액면가가 가장 높은 것은 1984년 세계우표전시회 기념 우표(5000원·사진 오른쪽). 현재 수집가들 사이에서 6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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