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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프가니스탄 최초 여성조종사 닐루파 라흐마니의 슬픈 사연은?

바람아님 2015. 8. 18. 08:36

 SBS 2015-8-16

 

중동여성 특유의 짙고 검은 눈썹과 커다란 눈이 아름다운 닐루파 라흐마니.

올해 23살인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공군 조종사입니다. 2년 전 그토록 염원했던 조종사 꿈을 이뤘을 때 라흐마니는 세상을 전부 얻은 듯 기뻤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마침내 조종사가 된 자신이 스스로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은 벅찼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란 타이틀을 얻은 직후 시작된 나날은 장미빛이 아닌 악몽이었습니다. 조종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이슬람 남성우월주의자들의 무시무시한 협박은 처음에는 전화나 편지의 형태였지만 곧 테러의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이들은 수시로 집을 공격했고, 그녀의 남동생은 총격과 차량 뺑소니를 당했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금기시하는 풍토 탓에 딸을 잘못 키웠다며 그녀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극심한 따돌림을 받아 결국 직장을 나와야 했고, 그녀의 언니는 동생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했습니다.

라흐마니를 괴롭히는 이들의 논리는 "이슬람교에선 여성에게 미국 등 서방과 협력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라흐마니가 이를 어겼다"는 겁니다. 그저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했을뿐인 라흐마니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테러로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위와 행복도 앗아가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 가진 그녀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군대에 있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공군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전 계속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마지막 인터뷰를 읽는 순간, 최근 서울의 한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조국의 창공을 지키는 멋진 조종사가 되겠다고, 공군에 입대한 라흐마니 앞에 펼쳐진 일상이 극단적인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지긋지긋한 살해 위협이었던 것처럼, 청운의 꿈을 안고 '교직'에 들어선 20대 초년병 여교사들을 기다린 것은 50대 남성교사들의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는 성추행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여교사들, 그러나 "일상적 성추행이 자행되는 학교는 그들에겐 공포영화의 셋트장 같았다"고 악몽 같은 상황을 토로합니다. 나라도 상황도 다르지만, 살해 위협을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조종사와 한국의 성추행 피해 여교사들의 상황은 참으로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늘상 살해위협 받으며 출근하는 삶과 늘상 성추행 위험이 도사린 곳에 출근해야 하는 삶,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여성인권이 낮은 나라'란 오명을 듣는 나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선 '정신적 인격 살인'이라 할 수 있는 '일상적 성추행'이 다른 곳도 아닌 공립학교에에서 버젓이 자행된 현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최효안 기자hyoan@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