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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시민은 아베의 '폭주'를 멈출 수 있을까?

바람아님 2015. 9. 20. 23:41
SBS 2015-9-20

아베 정권의 '전쟁 가능법' 입법 과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삼 놀랍고 새로웠다. 하나는 아베 총리의 집요함이다. 정치라는 것이 때론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것이고, 특히 민심의 반대가 심할 때는 뒤로 후퇴하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전후체제 탈피'의 확신범 아베 총리에게는 자신의 정치 일정표만 있을 뿐이었다. 미국에 약속어음을 발행해 준 대로, '가을 정기국회'에서 입법화 완료라는 목표에 '올인'했다. 민의를 무시하고 법안을 강행 기습처리하는 모습은 후진국 독재정권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모습은 '민심의 역동성'이다. 거리에 드러누워 가며 정권에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은 일본인에게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대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손을 잡고, 직장인이 휴가를 내고, 엄마들이 유모차를 몰고, 수만 명의 시민이 흠뻑 비를 맞아가며, 법안이 통과된 후에도, '전쟁 반대' '법안 폐지' '아베정권 퇴진'을 외쳤다. 일본 시민의 이번 저항은 이념에 관계없이 학생과 중산층이 함께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6.10 민주화 투쟁과 많이 닮았다. 그러면, 이들이 아베 정권의 폭주를 멈출 수 있을까?


● 아베 정권의 두 얼굴 , '경제'와 '폭주'    

아사히신문의 한 편집위원은  "아베 정권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하나는 '경제 최우선' 얼굴이고, 하나는 '이념적 폭주'의 얼굴이다. 선거가 있을 때는 '경제'를 내세우고, 선거가 멀리 있을 때는 특정비밀보호법, 안보법제 등 '비인기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정권은 초반에는 '아베노믹스'만 앞장세웠다.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겠다'라며 과감한 통화완화정책을 실행했다. '아베노믹스'는 정권의 존재감과 인기를 유지하는 데 1등 공신이었다.  2013년 7월 참의원(상원)선거에서 아베 정권은 절대 과반을 확보했다. 그런데 아베정권은 선거에서 이긴 후, 안면을 바꿨다. 2013년 가을부터 이념적 폭주를  시작했다.  "자신을 극우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라며 '적극적 평화주의' 깃발을 들었다. '일본판 NSC 창설'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처리했고, 2013년 12월에는 직접 야스쿠니 신사도 참배했다. 2014년 7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헌법 해석 변경 각의 결정까지 해치웠다.


아베 총리는 2014년 말 다시 얼굴을 바꿔 '경제'로 돌아왔다. '소비세 인상 유보'라는 경제 쟁점을 내세워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시 선거에 임한 것이다. 연립여당이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이제 큰 선거는 2016년 여름 참의원 선거만 남았고, 다시 이념의 얼굴을 내세워 2015년 '전쟁법안 입법화'를 강행처리한 것이다.


● 아베는 다시 '경제' 모드…시민들은 내년 '폭주'를 심판할까? 

아베 총리는 전쟁법안 강행처리 후, 일본의 보수지들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요미우리, 산케이 등 인터뷰의 제목은 '이제 경제에 전력'이다. 소비세 인상 경감 세율 도입, TPP협상 등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생으로 눈을 돌려 민심을 추스르겠다는 의도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참의원 선거는 자신의 일생의 과업인 '개헌'과 직결된 선거이다.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면, 상하 양원에서 개헌선을 확보하게 된다. 반대로, '전쟁법안'에 반대했던 민심도 내년 참의원 선거를 벼르고 있다. "선거의 결과로 치르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이제 더는 속지 않겠다"는 시민 인터뷰가 일본 진보지에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민의 뜻이 내년 선거에서 '반아베' 표로 결집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야당' '경제' '미국'…그리고 '망각'

현재 일본 제1야당은 민주당이다. 하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어떤 야당도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한다. 민주당은 '무능했던 정권'이란 꼬리표를 아직 떼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반아베표'가 결집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야당도 아직 이런 그릇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개혁, 연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미국은 '아베 담화'도 환영했고, '전쟁법안 입법화'도 반겼다. 현재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중국이란 공통의 적앞에서 '찰떡궁합'이다. 미국은 아베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행보도 눈감아주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부작용 속에서도 여전히 나름 굴러가고 있다. 아직 종착지에 다다르지 않은 정책이다. 미국이 굳건히 아베정권을 지지하고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나타나는 상황이 내년 여름 펼쳐진다면, 현재와 같은 민심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번 전쟁법안에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도 트위터 등을 통해 '반대'를 외쳤다. 일본 국민배우 '와타나베 켄' 유명가수 '나가부치 츠요시' 등 일일이 셀 수가 없다. 그런데 참의원 선거는 10개월 후이다. 일본 민심이 아베 폭주의 모습을 10개월 동안 잊지않고 이어갈 수 있을까?. 폭주정권은 '시민의 망각'과 함께 장기간 집권하는 법이다.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는 일본 시민의 말을 이번에는 믿고 싶다.     

      

김승필 기자kimsp@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