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신연수의 직언直口]시진핑의 분홍색 신발

바람아님 2015. 9. 25. 08:27

동아일보 2015-09-24 

신연수 논설위원

중국인들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라고 부르며 좋아한다. 그의 인기가 너무 높아 집단지도체제인 중국에서 다른 지도자들은 존재감이 없을 정도다. 그는 이웃집 아저씨같이 친근한 얼굴이지만 내공은 녹록지 않다. 15세부터 산시 성 옌안의 시골에서 벼룩과 굶주림에 맞서 싸우며 밑바닥부터 ‘인민’의 삶을 배웠다. 푸젠 성 성장을 하며 사상 최대 부패사건을 처리하는 등 30여 년간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강철처럼 단련되는 中지도자


그의 아버지 고(故) 시중쉰 국무원 부총리는 더 무서운 사람이다. 시중쉰은 13세에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여한 골수 공산당원이다. 공산혁명이 성공한 뒤 중앙당 고위 간부가 됐지만 문화대혁명의 회오리에 휩쓸려 13년간 지방에 연금당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견뎌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앞장섰다.

시중쉰은 잘나갈 때도 자식들에게 혁명정신과 검약을 철저하게 교육했다. 시진핑이 어렸을 때 누나들이 입던 분홍색 옷과 신발을 물려 입기 싫다고 반항했다가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멀리 내다보고 오래 단련해 높이 뛰는 데는 중국 지도자들을 당할 사람이 없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시 주석이 22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 둔화에 대해 “아무리 큰 배라도 넓은 바다를 항해할 때는 높은 파도에 흔들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다소 흔들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그는 “성장둔화와 시장불안도 개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빈말은 아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들을 유치해 경제성장을 했지만 이제 성장모델을 바꿨다. 수출 제조업 위주에서 내수와 서비스업의 균형 발전으로 바꾸기 위해 2009년 이후 최저임금을 연평균 14.4%씩 올렸다. 제조업은 저임금과 공해에 의존하는 공장들을 폐쇄하고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바꾸고 있다.

고임금과 환경규제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성장률이 떨어져도 중국 공산당의 경제 방향은 흔들림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검소함을 익힌 시 주석은 ‘부패 척결’을 앞세워 정치적 장애물들을 없앰으로써 개혁에 추진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변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요즘 중국 현지 기업들이 고급 제품들을 반값에 쏟아내는 바람에 고전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은 한국 산업기술의 현주소를 분석한 ‘축적의 시간’이란 책에서 “중국 산업기술은 한국을 ‘추격’하는 단계를 넘어 ‘추월’을 눈앞에 뒀다”면서 “이미 해양플랜트 자동차 가전 휴대전화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 최초의 모델을 제시하는 단계”라고 했다.

최근 중국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놓고 서구에서 “중국 모델은 끝났다”는 섣부른 예측이 나온다. 1997년, 2008년에 이어 2017년경 위기가 다시 올 것이라는 ‘세계 경제위기 10년 주기설’도 유행한다. 이번엔 중국발(發)이 되리라는 것이다.

중국發 경제위기도 두렵지만

중국발 경제위기도 두렵지만 나는 중국 공산당의 경제정책이 성공하는 것이 더 두렵다. 일시적 경제위기는 2∼3년이면 극복하지만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중국에 경쟁력을 잃으면 영영 되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다. 서울대 교수들은 “중국의 설계도를 받아다 한국이 납품하는 시대가 온다”지만 납품할 데라도 있을지 걱정이다. 중국의 첨단산업이 굴기(굴起)하는데 한국은 무슨 대비를 하고 있나.

신연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