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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이민자 엄마로 살기

바람아님 2015. 11. 16. 09:10

(출처-조선일보 2015.11.13 진주현 미 국방부 DPAA 연구원·인류학 박사)


진주현 미 국방부 DPAA 연구원·인류학 박사딸 리아가 돌 즈음 되었을 때 아기노래교실에 등록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은 새 노래보다는 누구나 아는 노래로 시작하자고 했다. 
'더 잇치 빗치 스파이더' 노래로 수업이 시작됐고 부모들은 다 같이 따라 불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멜로디는 익숙하지만 가사는 모르는 노래였다. 
첫 수업은 나만 모르고 미국 부모들은 다 아는 노래로 채워졌다.

집에 와 남편에게 이 노래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미국에서 자란 교포다. 새삼 내가 이민자 엄마라는 걸 깨달았다. 
스물여섯에 유학 와 10여 년간 살며 어느 정도 미국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출산한 날 병원에서 간호사가 뭔가 설명하는데 도무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응가'의 영어식 표현이었다. 교과서에서도 직장에서도 배운 적 없는 말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됐다. 
내가 모르는 놀이를 배워오면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었고, 처음 보는 책을 받아 오면 남편은 자기가 어릴 때 
읽었던 거라며 반가워했다. 나는 나대로 '곰 세 마리' 노래를 가르쳐주고 '뽀로로'를 보여준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된장찌개도 좋지만 리아는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샌드위치도 먹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자란 내가 미국에서 엄마 역할을 하려니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종종 한국의 다문화 가정이 떠오른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엄마들도 '학교종이 땡땡땡'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낯설 테니 말이다.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다 보니 나 같은 이민자 엄마가 그다지 외롭지 않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한국 문화를 모른다고 따돌림받는다. 
그러잖아도 힘든 타향살이에 아이들까지 놀림을 받으면 엄마 마음이 참 아플 거다.

[일사일언] 이민자 엄마로 살기
나는 우리 딸이 한국과 미국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며 자랐으면 한다. 
한국 엄마라 놓치는 미국 문화도 있겠지만, 미국 아이들은 접하기 힘든 한국 문화까지 배우며 클 수 있다는 건 
이민자 엄마를 둔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