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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시루떡 계단, 밟으면 '물컹' 할까(2)

바람아님 2013. 5. 5. 20:46

부드러운 시루떡 계단, 밟으면 '물컹' 할까(2)

 

     빌라촌 내 유일한 한옥, 이광수 고택



홍지문. 홍지동이란 이름은 여기서 비롯했다.

ⓒ 김대홍

내가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이 바로 '홍제동-홍은동-홍지동-부암동-

청운동-효자동-내수동' 길. 당연히 홍은동·홍지동 길은 눈감고 그릴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알고 다니는 것과 모르고 다니는 것은 천지 차이다. 모르고 천 번 만 번 다녀도 그 길은 그 길일 뿐이다.

조전 정조 때 문필가였던 유한준이 남긴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달리 보면 '모르고 보면

항상 전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대원군 별장(홍제동 125번지, 서울시 유형문화재 23호), 홍지문·탕춘대성(홍지동 산4, 136-3, 서울시 유형문화재 33호), 서예가 손재형 집이었던 궁중요리집 '석파랑', 소설가 이광수 고택(홍지동 40), 보도각 백불(홍은동 8, 서울시 유형문화재 17호) 등을 만나게 됐다.

이 중 가장 최근에 알게 된 곳이 이광수 고택이다.

몇 달 전 이광수 집을 찾기 위해 홍지동 골목길을 누빈 적이 있었다.

골목길 입구엔 분명 '이광수 가옥'이라고 쓰여 있는데, 아무리 오르락내리락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르막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는지

모르겠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자전거를 끌고 다니다보니 어느새 땀이

났다.

그 덕에 골목 이곳 저곳을 구경하긴
했다. 주위는 모두 빌라 아니면 양옥집이었다. 어디서도 한옥집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곳에서 유일한 한옥이라 했는데

도대체 어딜까.

그 비밀은 3주 전 풀렸다. 그 때 날이 너무 어두웠던 게 문제였다. 게다가 담이 높아서 집 안이 잘 보이지 않았고,

집 주위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이었다.

11월 중순 햇빛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오후 다시 그 곳을 찾았다. 눈에 불을 켜고 언덕을 올랐다. 마침내 오른쪽

집에서 한옥 처마가 살짝 머리를 내민 것을 봤다. 야호! 삼지동 1길이다. 근처에 있는 절 소림사 앞에 연못 세 개가

있었다고 해서 삼지동이다.

'친일파' 이광수의 집을 보존해야 하는 까닭



이광수 고택.

ⓒ 김대홍

집에서 한 어르신이 나오셨다.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어르신이 물어보신다. "학생, 어디 찾으시오?" "혹시 여기가 이광수 집이 맞습니까?" "예, 맞아요. 구경하고 싶으면 벨 누르고 구경하러 왔다고 이야기 하세요."

잠시 뒤 집 주인의 며느리라고 밝힌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늦은 시간 남의 집을 구경한다는 게 미안했지만, 아주머니는 흔쾌히 구경하라고 하셨다.

알고 봤더니 조금 전 어르신은 집 주인의 부인 되시는 분이었다. 조금 전에도 학생들 몇 명이 다녀간 터였다.

집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집 안엔 이광수가 1934년 봄에 옮겨심은 나무가 지금껏 자라고 있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기다리고 계셨다.

"한옥이 불편하진 않으세요?"

"오래 살다보니 이제 익숙해졌어요."

이 집 주인은 이 곳이 이광수 집이라는 것을 알고 이사를 했다. 당시 이광수 고택은 거의 쓰러져가는 상태였다. 집으로서 구실을 하기 힘든 상태였던 것.

완전히 개축하고자 했으나, 시민단체 쪽에서 급하게 찾아와 요청하자 보존을 약속했다. 그렇게 이광수 고택은 지금처럼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혹자는 이광수가 친일파니 집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미당 서정주의 양옥집, 친일파 지식인 이광수의 고택 등을 보존하자는 것은 그 집과 사람들을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 생각 또한 그렇다.

메주를 단 집, 요즘 세상에 메주라니...



보도각 백불. 돌에 새긴 불상이다. 옥천암 경내에 있으며 홍은2동에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17호다.



홍지동 골목은 길맛이 별로 없다. 길이 가파르긴 하지만 단순하고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집도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들이 많아 농익은 맛은 덜하다.

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홍지동과 붙어 있는 홍은2동이다. 홍지문을 지나 홍지문길로 오르면 아주 예쁜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이 곳 골목길 계단은 시루떡같다. 칼로 자른 듯이 반듯한 요즘 계단과 달리 울퉁불퉁하다.

시멘트로 계단을 바른 뒤, 억지로 평평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효과는 대단하다. 부드러운 물결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아래서 보면 계단이 살아서 꿈틀대며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곡선 느낌이 물씬한 계단은 밟으면 '물컹'하며 푹 꺼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부드러운 계단. 홍은2동 계단이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한쪽엔 철제 손잡이가 대부분 설치돼 있지만, 부드러운 계단 덕에 위압감이 없다.

반듯하기만 한 직선 계단이었다면 아마 현기증이 났을 것이다.

홍은2동 길은 길이 있을까 싶은데, 계속 하늘로 오른다. 그러다가 끝에 이르면 갑자기 옆으로 흐른다. 홍은2동

하늘길이다. 여기서 보는 서울 야경이 끝내준다. 저 멀리 보이는 내부순환도로는 멋있는 강이 된다. 야광등을 켠

자동차는 반딧불이 되고.

메주를 묶어놓은 집을 봤다. 김치도 담가먹지 않는 요즘 메주라니…. 문화재감이다. 놓칠 수가 없다. 다음에 된장과

간장 담글 때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 이름 밑에 아들 이름까지 적은 명패도 있다. 정답다. 이른바 '

가족 실명제 명패'다.

빌라촌 옆에 골목길... '여기 있는줄 몰랐지?'



홍은2동 계단.



홍지문길은 포방터1길로 이어진다. 홍은 2동의 옛 이름이 '포방골'이며,

예전에 포를 쏘는 연습장이 있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마 서울

내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이 있었으니 여기서 가끔씩 포를 쏘기도

했을 것이다.

탕춘대성이란 이름은 연산군 시절 왕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어 붙은

이름이며, '탕춘'이란 봄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지금 동네엔 포방터 시장이

있어 옛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부드러운 계단은 계속 이어진다. 허리가 구부러진 어르신이 산길을

오르다가 잠시 숨을 내쉰다. 언덕을 올라오는 학생도 가픈 숨을 내쉰다.

산동네 골목 마을에선 누구나 쉬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느려진다.

군데군데 빈 집이 보이고, 밭도 보인다. 이따금씩 가로등이 보인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도심과 달리 어둠과 밝음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다.

신기한 것은 홍은2동을 돌 때 개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골목동네엔 어디나 개가 많았다. 북아현동엔 고양이가 많긴 했지만.

여기선 개를 많이 키우지 않는지, 아니면 조용한 것인지 개 소리 때문에

놀란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산길에서 내려와 도로가로 나오면 다시 빌라촌이다. 산길과 전혀 다른

분위기. 홍은2동은 '산 쪽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는 동네다. 옆엔 홍제천이 흐른다. 아니 흐른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모래천인 이 곳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다.

참, 홍은2동은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2007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전국 콘테스트'에서 서울에서 유일하게

우수마을로 뽑힌 곳이기도 하다.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혹시라도 '부드러운 계단'이 선정 이유였다면

박수를 치고 싶다.

수직의 세상, 그러나 계단이 춤추는 동네

집도 수직으로 치솟는 집이 환영받고, 길도 쫙 뻗은 곳이 대우받는 요즘이다. 직선으로 치솟은 집은 아래를 내려보고,

직선으로 쫙 뻗은 길은 속도를 내고 싶게 만든다.

허나 속도는 곧 에너지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속도에 집착할수록 사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진다. 근대문명을 비판한 사상가 이반 일리히의 말이다.

계단이 부드럽게 춤을 추는, 산을 닮은 동네 홍은2동. 그 동네에선 옛날에 포를 쏘았고 연산군이 유흥을 즐겼다.

이 곳이 경치 좋은 곳이었다는 흔적은 홍지동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 유흥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고,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노곤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그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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