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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임금에게 조언하는 데도 요령이… 충신이라고 늘 목숨을 건 건 아니었다

바람아님 2015. 12. 6. 01:21


조선일보 : 2015.12.05 

[이한우의 예나 지금이나]

요즘은 잘 안 쓰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용어 중 하나가 '간(諫)하다'는 말이다. 간(諫)한다는 것은 임금이나 부모님 등 윗사람이 옳지 못한 생각을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보자면 비판이 될 수도 있고 설득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모시고 있는 윗사람을 비판하거나 설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때도 간을 잘못 했다가 신세를 망친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마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때는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사간원(司諫院)이 있었다. 책임자는 대사간(大司諫·정3품 당상관)이고 그 아래 사간(司諫·종3품), 헌납(獻納·정5품), 정언(正言·정6품)을 거느렸다. 이들이 하는 활동을 흔히 언론(言論)이라고 불렀다.

이들 간관(諫官)들은 누구보다도 자주 임금에게 껄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수시로 고초를 겪었다. 성종(成宗) 때의 일이다. 1493년(성종 24년) 8월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간관들이 성종의 처사를 간하자 화가 난 성종은 "지금의 대간(臺諫)들은 털을 불어가며 작은 흠집을 찾아내려 한다"며 대간들을 잡아들여 국문(鞠問)할 것을 명했다. 이에 8월 6일 대사간 허계(許誡)가 상소를 올려 국문 중단을 간절하게 요청한다. 그중에 이런 말이 있다.

"신하가 말을 올리는 방법이 하나가 아닙니다. 정간(正諫)이 있고 규간(規諫·정해진 법규에 따라 간하는 것), 풍간(諷諫), 휼간(譎諫)이 있으니 그 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모두 임금을 허물이 없는 땅에 두려는 것입니다."

예부터 오간(五諫)이라는 말이 있었다. 말과 태도의 강도에 따라 나눈 것이다. 첫째, 정간(正諫)은 곧이곧대로 간하는 것으로 직언(直言), 직간(直諫), 강간(强諫)과 통한다. 아량이 아주 넓은 임금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정간은 자칫 화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가장 간절하기에 충간(忠諫)임이 분명하다.

둘째, 장간(戇諫)은 장(戇)이라는 말뜻 그대로 우직하게 눈치 살피지 않고 간하는 것이다. 전후 맥락을 살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고집스레 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정간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강간(降諫)은 말 그대로 자신을 최대한 낮춰 겸손한 문체나 태도로 할 말은 하는 것이다. 왕권이 강한 임금일수록 간하는 강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넷째, 휼간(譎諫)은 에둘러 간하는 것이다. 고사(故事)나 시구를 인용해 은근하게 간하는 것이다. 세조 6년(1460년) 4월 26일 세조는 종친과 공신들을 경회루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세조가 큰아버지 양녕대군에게 "저는 불교를 좋아하는 임금입니다"고 말하자 양녕은 조카 임금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금이 불교를 좋아하여 재물을 손상하고 백성을 해치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옛 사적(史籍)에 두루 통달하시어 고금(古今)의 성패(成敗)를 두루 훤하게 알고 계시니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은근히 꾸짖는 말이었으나 세조는 이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다섯째, 휼간과 비슷하면서 더욱 에둘러 간하는 것이 풍간(諷諫)이다. 풍자를 통해 알듯 모를 듯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깐깐한 선비들은 풍간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간하는 방법이라 하여 폄하했지만 실은 풍간이야말로 할 말은 하면서 일도 풀어내는 고도의 테크닉이었다. 비판의 강도로 보자면 정간, 장간, 강간, 휼간, 풍간 순이겠지만 설득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풍간, 휼간, 강간, 장간, 정간 순이 아닐까?

이한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