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전 일이다. 우리은행 미국 뉴욕주재원에게 급한 전갈이 날아왔다. “행장님이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참석을 위해 워싱턴으로 가니 차질 없이 준비하라”는 한국 본점의 지시였다. 비상이 걸렸다. 주재원은 최고급 세단을 빌리고 육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손수 차를 몰 요량으로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지리도 미리 익혔다.
배연국 논설위원 |
일본인은 최고급 세단을 두 대나 빌렸다. 한 대는 행장이 타고, 여분의 한 대는 그 차를 뒤따르게 했다. 혹시 고장으로 차가 멈춰서는 불상사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운전도 베테랑 기사를 고용해서 맡겼다. 호텔 예약 역시 차원이 달랐다. 행장이 묵는 2박보다 앞뒤로 하루씩을 더 예약했다. 행장의 체류기간 연장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행장이 묵기 전날에 직접 잠을 자보고는 불편함이 없는지 낱낱이 점검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인 주재원은 일본인 주재원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국민성에 새삼 눈을 뜨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에 살았다. 미국 생활이 처음인 한국인은 이웃 주재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그 일본인이 한마디 했다. “당신의 전임이 하던 질문을 왜 똑같이 반복하느냐”는 핀잔이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일본인은 가죽 표지를 씌운 파일을 들고 나왔다. 1000쪽 분량의 그 파일에는 미국 체류기간 중에 몸으로 터득한 생활 노하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동차 임대, 음식점 예약,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자질구레한 일까지….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 하던 일종의 매뉴얼이었다. 주재원이 바뀔 때마다 첨삭을 하다 보니 묵직한 분량으로 늘었던 것이다.
한국인 주재원은 감동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날부터 자기가 경험으로 배운 노하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5년의 파견기간이 끝나자 어느덧 그의 파일도 300쪽 분량으로 불었다. 그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후임자에게 파일을 넘겼다. 은행을 퇴직한 뒤 그는 지난해 뉴욕을 다시 방문했다. 우리은행 주재원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파일 얘기를 끄집어냈다. 지금쯤 파일의 분량이 묵직하게 변해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무슨 파일요?” 후임 주재원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주재원이 몇 번 바뀌면서 파일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한 은행 주재원의 얘기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활 태도를 모두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은 대체로 원칙을 중시하고 철두철미하다. 일상생활에서 매뉴얼이 체질화돼 있다. 우리는 매뉴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사 있다고 해도 잘 활용하지 않는다. 사건이 터지면 뒤늦게 매뉴얼을 소리치지만 그때뿐이다.
뉴욕의 경험담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을 터이다.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다. 우리는 비양심의 일본을 향해 자주 분노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그런 방식으로 일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미운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극일의 진정한 힘은 거기서 나온다. 은행 주재원이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어찌 다시 담을지 각자 생각해봐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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