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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⑥] 중국꿈이 말하는 ‘부흥’은··· ’왕(王)의 귀환’을 뜻하나

바람아님 2015. 12. 22. 00:33

[J플러스] 입력 2015.12.20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시진핑은 중국꿈(中國夢)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방점은 부흥(復興)에 찍힌다. 부흥이란 다시 부(復)와 흥할 흥(興)이 더해져 만들어진 말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흥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다.

시진핑이 뜻하는 중국이 과거에 흥한 적은 언제인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때인가, 아니면 국력을 크게 떨쳤던 한(漢) 무제(武帝) 때인가. 그도 아니면 ‘정관(貞觀)의 치(治)’란 말을 낳았던 당(唐) 태종(太宗) 당시를 가리키는 것인가.

다 아니다. 중국꿈이 말하는 부흥은 1840년 아편전쟁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그렇게 말할 근거가 있는가? 있다. 천안문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높이 38m의 인민영웅기념비가 답이다.


이 기념비의 뒷면에 새겨진 비문은 1949년 9월 30일 쓰여진 것이다. 이튿날인 10월 1일 건국을 선포하기 전날 쓰여진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초안을 잡고 저우언라이(周恩來)에 의해 쓰여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 비문을 통해 중국 건국의 두 주역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나섰는지를 알 수 있다. 비문은 세 단락으로 나뉜다. 첫 단락을 읽으면 ‘지난 3년 이래 인민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에서 희생된 인민영웅이여 영원하라’다.


지난 3년이란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맞붙었던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가리킨다. 이 때 희생된 선열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단락은 ‘지난 30년 이래 인민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에서 희생된 인민영웅이여 영원하라’다. 지난 30년이란 1919년부터 1949년까지의 30년을 말한다. 1919년에 한반도에서 3.1 운동이 있었다면 중국에선 5.4 운동이 있었다.

항일운동인 5.4 운동이 중국 공산당에게 중요한 건 바로 이 시위에서 드러난 노동자와 학생의 파워를 보고 코민테른이 이제 중국에서도 공산 혁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보이딘스키를 파견해 중국 공산당 창당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21년 만들어진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 설립 이후 스러진 많은 무명 용사를 기리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마지막 문단이다. 중국에서 곧잘 말하는 ‘재미 있는 내용은 뒤에 나온다(好戱在后)’는 경우와 같이 말이다.

세 번째 단락은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1840년 그 때부터 국내외 적들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친 투쟁 끝에 희생된 인민영웅이여 영원하라’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두 건국의 주역이 개국을 선포하기 전날 목욕재계하고 선열을 추모하는 글을 쓸 때 바로 1840년의 아편전쟁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기 위해 벌인 전쟁으로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여기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 아편전쟁의 상처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오와 저우가 돌아가고자 하는 시대는 아편전쟁 이전의 시기다. 마찬가지로 시진핑이 회귀하고자 하는 시대 역시 아편전쟁 이전의 시기다.



아편전쟁 이전 시기의 중국, 즉 청(淸)나라가 어땠길래 그런 것일까. 영국의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한 국가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GDP를 연도별로 조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조사 가운데 아편전쟁 발발 20년 전인 1820년의 경우가 있다.

당시 청나라 GDP는 전 세계의 32.96%를 차지했다. 유럽 전체는 22.91% 정도였고 신생 국가 미국은 1.81%에 불과해 유럽과 미국을 합해도 중국보다 무려 8% 이상 모자란다. 즉 청나라가 단연 세계 1위임을 알 수 있다.

시진핑이 중국꿈에서 말하는 부흥이란 따라서 중국의 국력이 세계 최강이었을 당시로 돌아가자는 외침에 다름 아니다. ‘왕(王)의 귀환’을 이루자는 포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