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헝가리 기자에게 발길질 당한 시리아 난민의 최근 삶은

바람아님 2016. 1. 17. 00:00
세계일보 2016-1-16

오사마 압둘 모센(53)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리아 난민 중 한 명이다. 모센은 지난해 9월 8일(현지시간) 막내아들 사이드(7)를 안고 세르비아와의 국경에서 난민 봉쇄에 나선 헝가리 경찰을 피해 달리다가 헝가리 N1TV 카메라 기자인 페트라 라슬로(여)의 발길질에 넘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독일 방송 RTL의 스테판 리히터 기자가 아이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해 저녁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순식간에 94만5000명이 이 동영상을 클릭했고, 페이스북에서도 9만5000명이 시청했다. 세계적으로는 3000만∼4000만 명 가량이 이 동영상을 봤다. 난민에 대한 안타까움, 방관자였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헝가리 카메라 기자에 대한 분노가 교차했다. 스페인 축구코치협회는 모센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고, 항의 메일과 전화가 쏟아진 N1TV는 라슬로를 해고했다. 



모센은 헝가리 기자에게 발길질을 당한 뒤 4개월여가 지난 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를 했다. 13일(현지 시간) 보도된 '여정, 넘어짐 그리고 새로운 삶'이란 제하 기사에서 모센은 그간의 상황과 요즘의 삶, 앞으로의 계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그는 “인생은 축구와 같다”고 운을 뗐다. 킥오프(탄생)에서 마지막 휘슬(죽음)이 울릴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는 2012년 고향인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조르를 떠나기 전에는 일자무식 트럭운전사의 8번째 자식이었고, 네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는 아랍권에서는 특이하게 알레포에서 축구를 배웠다. 군복무를 마친 뒤 결혼을 했고, 학교 체육교사, 유소년 축구팀 코치에 이어 시리아 프로축구팀 알포투의 트레이너를 지냈다. 시리아의 악명 높은 독재와 억압, 감시는 축구를 하는 순간 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다. 그가 사는 데이르에조르에도 하루 3~4회씩 폭격이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죽음의 그림자가 모센 가족을 위협했다. 고향을 떠나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고민하던 어느날 그의 형이 집으로 찾아와 3500달러를 건네주며 피난길에 오르라고 등을 떠밀었다. 3년 간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도착지는 터키 남부 연안도시 메르신이었다. 터키에 정착할까도 생각했지만 일자리가 없었다. 또 다시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가족 모두가 함께 길을 떠나느니 일부가 먼저 유럽에 도착해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아내와 장남, 딸이 터키에 남기로 했다. 둘째 아들 무함마드는 지중해를 건너서, 자신과 막내 아들 사이드는 육로를 통해 유럽에 들어가 독일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센과 사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헝가리 뢰스케 인근 난민수용소에 도착했고 헝가리 기자에게 발길질을 당했다. 모센은 처음에는 헝가리 경찰관이 발을 걸었다 생각했다. 근처 경찰관을 향해 “개같은 짓이다”고 소리친 뒤 들판 끝에 있는 밭으로 겨우 몸을 피했다. 이들 부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걸었고, 마침내 독일 뮌헨에 도착해 둘째 아들과 재회했다. 


미구엘 앙겔 갈란 스페인축구코치협회 회장은 TV방송을 통해 모센이 라슬로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장면을 봤다. 모센이 시리아에서 축구코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스페인에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수소문 끝에 뮌헨에 있는 모센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통역을 통해 일자리는 물론 가족이 머물 숙소와 어학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했다. 세 부자는 지난해 9월17일 마드리드 기차역에 도착했다. 



스페인 도착 몇 주 동안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축하파티가 열렸고, 레알마드리드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사진도 찍었다. 막내 사이드는 호날두와 함께 경기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힘들었던 지난 삶은 쉽게 잊혀졌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부풀었다. 수백만 시리아 난민에게 모센은 안정된 숙소와 벌이, 사회적 대우 등 부러운 롤모델로 통했다. 


하지만 모센은 곧 팍팍한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우선 말이 안통했다. 매일 출근하는 축구코치트레이닝센터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완전한 이방인인 셈이다. 하릴없이 체육관을 맴돌다가 퇴근하기 일쑤다. 마트에서 “토마토 1㎏에 얼마냐”고 묻는 데도 진땀을 뺀다. 모센은 “하루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마치 돌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도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는 협회로부터 코치비 명목으로 한달에 2000유로(약 264만원) 정도를 받는다. 음식값과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야 겨우 터키에 있는 아내에게 보낼 200∼300유로를 남길 수 있다. 집안일도 그에겐 버거운 일상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지만 익숙치도 않은 데다 너무 피곤해 퇴근하자마자 곯아떨어질 때가 많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축구코치협회나 스페인 인권단체 측은 터키에 있는 모센의 가족을 데려오려고 애쓰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유럽 입국에 필요한 신분증명서는 터키 앙카라에 있는 시리아대사관에서 떼어 주는데, 놀랄 일은 아니지만, 시리아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스페인 정부가 임의로 터키에 있는 모센의 가족을 데려올 수 있지만 스페인은 이같은 선례를 남기길 주저한다. 

갈란 회장은 지난 성탄절 즈음해 모센에게 며칠 동안 터키행 비행기표를 예약해줬다. 모센은 “막내아들이 종종 엄마에 대해 묻는다”며 “함께 살 그날까지 가족이 모두 살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슈피겔은 모센의 현재 상황이 일종의 ‘유럽 통합을 위한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난민들보다 나은 조건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한 모센마저 현지인과 유럽 문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여타 평범한 수백만 난민은 과연 버텨내겠느냐는 것이다.


모센을 발로 차 넘어뜨린 헝가리 라슬로는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일절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에서 위증과 명예훼손 혐의로 모센과 페이스북을 고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라슬로는 “모센은 경찰관의 잘못이라고 했던 처음의 증언 내용을 번복했다”고 했고, 페이스북에 대해서는 “내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페이지나 그룹을 삭제하지 않아 증오를 불러일으켰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헝가리에서의 삶이 안전하지 않다며 러시아로의 이민을 내비쳤다. 


송민섭 기자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