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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썰매도 경기장도 없던 한국, 1등으로 들어왔다

바람아님 2016. 1. 25. 09:42

썰매도 경기장도 없던 한국, 1등으로 들어왔다

(출처-조선일보 2016.01.25 취재=최종석 기자 편집=뉴스큐레이션팀)

거침없이 질주하던 한국 봅슬레이가 결국 세계 1위까지 올랐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가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봅슬레이 경기장이 없는 나라 한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썰매를 빌려 타며 이룬 기적이다. 

[봅슬레이 월드컵 아시아 첫 金 원윤종·서영우]

거침없이 질주하던 한국 봅슬레이가 결국 세계 1위까지 올랐다. 봅슬레이 남자 2인승 국가대표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는 23일(한국 시각) 열린 캐나다 휘슬러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43초41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가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스위스가 한국과 같은 기록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고, 러시아가 0.01초 차이로 3위가 됐다. 이번 대회 금메달로 원윤종·서영우 조의 세계 랭킹은 사상 처음 1위로 올라갔다. 봅슬레이 경기장이 없는 나라 한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썰매를 빌려 타며 이룬 기적이다.

최고 시속 150km 넘나드는 봅슬레이는 어떤 종목?
원윤종·서영우, 봅슬레이 월드컵 사상 첫 金…"아시아 최초 쾌거"
'금메달' 원윤종·서영우, 로이드 코치 부인과 함께 / 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평창서 금메달 꼭 따낼 것"


- 2년 뒤 평창서도 金메달 보인다
"소치 때는 출전이 목표였지만 지금추세론 金 가능할 것 같아"

두 선수는 이날 본지와 인터뷰에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출전 자체가 목표였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금메달을 꼭 따겠다"며 "지금 추세로만 간다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서영우는 "봅슬레이는 트랙에 대한 적응 정도가 제일 중요하다"며 "휘슬러 경기장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이라 

경기 전날 은메달까지는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원윤종(왼쪽)과 서영우가 2015년 11월 29일(한국 시각) 독일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월드컵 
1차 대회 봅슬레이 남자 2인승에서 한국 봅슬레이 사상 첫 월드컵 동메달을 따낸 뒤 환호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두 사람은 성결대 체육교육과 선후배 사이로 불과 6년 전만 해도 평범한 체육교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러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이끈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19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국가대표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 봅슬레이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판단력이 빠른 원윤종은 앞에 앉아 썰매를 조종하는 파일럿을 맡고,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서영우는 썰매를 미는 

브레이크맨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뒤 불과 4년여 만에 세계 랭킹 1위가 됐다.

과학적인 트레이닝의 덕도 크다. 한국스포츠개발원과 대표팀은 영상 분석을 통해 썰매가 좌우로 쏠리는지 확인했고 

두 선수의 체력을 측정해 어떤 근육을 더 발달시켜야 하는지도 분석했다. 

시속 140㎞를 넘나드는 속도와 전복의 위험에도 견딜 수 있도록 심리 훈련도 같이 했다.


◇"대체 선수 없어 계속 출전"


6차 대회에선 9위에 그친 이유? 대체선수 없어 허리 아파도 출전

두 선수는 24일 이어서 열린 6차 대회에선 1분43초54로 9위에 그쳤다. 이에 대해 서영우는 "다른 나라는 이렇게 대회가 연달아 열리면 (뒤에서 썰매를 미는) 브레이크맨을 바꾸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선수가 없어 허리가 안 좋은데도 뛰었다"고 했다. 0.01초 차이로 등수가 갈리는 봅슬레이에선 작은 차이 하나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

월드컵 대회가 이례적으로 이틀 연달아 열린 것은 휘슬러 경기장의 특징 때문이다. 휘슬러의 별명은 '50대50'이다. 커브와 경사가 심해 100대가 뛰면 50대는 전복된다는 뜻에서 붙었다. 그래서 IBSF는 4인승 경기를 다른 경기장에서 치르고 2인승 경기를 연달아 휘슬러 경기장에서 열었다. 한국 선수들도 "앞선 봅슬레이가 줄줄이 전복돼 조심스럽게 달렸다"고 했다. 두 선수는 내년에 완공되는 평창 경기장에 기대가 크다고 했다. 더 많은 선수가 세계무대를 두드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스켈레톤의 윤성빈도 24일 열린 월드컵 6차 대회에서 1분45초24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이번 시즌 열린 월드컵 대회 5회 연속 메달 행진이다. 세계 랭킹도 3위에서 2위로 끌어올렸다. 

월드컵 1차 대회에서 12위였던 윤성빈은 2차 대회에서 4위에 올라 5위까지 주는 메달을 걸었다. 

그리고 3차 대회에서 동메달, 4·5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날 금·은메달은 라트비아의 두쿠르스 형제가 나눠 가졌다. 

금메달을 딴 동생 마르틴스 두쿠르스는 이번 시즌 열린 6차례 월드컵 대회에서 모두 1위를 독식했다.

감동의 시상식장… 사부님 대신 사모님 오셨네요


원윤종·서영우가 한국 봅슬레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대회 금메달을 딴 23일(한국 시각) 시상대에 오른 두 선수의 목엔 

메달이 두 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대회 금메달이고 나머지는 최근 숨진 고(故) 맬컴 로이드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코치의 부인이 경기 전에 선물한 

것이었다. 로이드 코치의 부인 은 이날 숨진 남편을 대신해 제자들의 우승 현장을 지켰다. 시상식도 함께 하며 기쁨을 나눴다.

봅슬레이 대표팀의 맬컴 로이드 코치 / IBSF 홈페이지

로이드 부인은 메달 앞면에 '모든 경기에 함께하겠다. 

금메달을 향해 가라(Every race I'll be with you. Go for gold)'는 문구를 새겼다. 

뒷면엔 '내가 가르친 것을 기억하라(Remember what I have taught you)'고 썼다.

원윤종·서영우는 경기를 마친 뒤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로이드 코치를 추모했다. 

시상식엔 '로이드 코치님, 편히 쉬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쓴 종이 카드를 들고 나왔다. 

원윤종은 로이드 부인이 선물한 메달을 가리키며 "코치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부인이 오셔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봅슬레이 영국 대표 출신인 로이드 코치는 2014년 한국 국가대표 코치로 부임해 각종 기술을 전수했다. 

로이드 코치 부임 이후 원윤종·서영우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이 감동 남긴채… 암투병 숨겼던 '얼음판의 히딩크'
한국 봅슬레이 코치 로이드, 캐나다 자택서 사망 뒤늦게 알려져

로이드 코치가 숨진 원인과 관련, 그간 암이 아닌 심장병으로 숨졌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부인은 연맹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남편 상태가 하루하루 악화됐으며 (지난해) 12월 31일엔 병원이 말기 암(terminal cancer)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1월 3일 남편은 급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인은 '처음엔 병원 측도 하루 이틀이면 나을 것으로 봤고, 우리도 캘거리(자택)로 떠날 수 있는 줄 알았다'고도 했다. 

가족조차 그가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외국팀이 버린 썰매 타다가… 이젠 현대車 썰매로 달린다

원윤종·서영우가 사상 처음으로 국산 썰매를 타고 국제 무대에 나선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은 원윤종·서영우가 현대자동차의 특수 제작 독자 모델을 타고 오는 27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럽컵에 출전한다고 24일 밝혔다.

유럽컵은 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대회다. 

원윤종·서영우조는 당초 출전하지 않을 방침이었지만, 새 썰매의 실전 테스트를 위해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대표 선수들은 이전까지 유럽산 중고 썰매를 빌려 타다가 2013년 대한체육회의 지원으로 네덜란드 '유로테크' 썰매를 

처음 구입해 대회에 출전해 왔다. 현재 제품은 라트비아의 BTC 제품이다.



봅슬레이는 '빙판의 F1(포뮬러 1)'이라 불린다. 

평균 시속 130㎞대, 가파르고 꾸불꾸불한 얼음 트랙을 최고 150㎞의 속도로 안전하게 주파하기 위해선 공기역학을 고려한 

첨단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페라리, 맥라렌 등 세계 최고의 레이싱카 제조업체들이 봅슬레이 썰매를 통해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현대차는 그간 수백 가지가 넘는 디자인 작업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윈드터널 테스트를 거쳐 대표팀 썰매를 제작해 왔다. 

현대차 제품기획실의 김석준 선행제품기획팀장은 "SK케미칼과 공동으로 개발한 탄소섬유 재질의 보디(body)를 특수 공법을 

통해 더 가볍고 단단하고 균일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앞부분 '프론트 노즈(Front Nose)' 부분과 범퍼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썰매의 무게중심은 스피드에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대표 선수들의 체형을 3차원(3D) 스캔 기술로 측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탑승 자세를 구현하는 '맞춤형 썰매'를 만들었다. 현대차는 공기저항을 외국 최고 제품과 비교한 결과 거의 

뒤지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이 국산 썰매는 평창올림픽에 대비한 완제품은 아니다. 

앞으로도 선수 의견을 반영해 많은 개선을 해나가야 한다. 

김석준 팀장은 "국내에 트랙이 생기면 '선수 맞춤형'에서 '선수+트랙 맞춤형'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