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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에 질식한 레미제라블..프랑스 난민정책 조롱

바람아님 2016. 1. 28. 00:12
세계일보 2016-1-26

지난 24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런던 주재 프랑스 대사관 건너편. 밤 사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포스터를 본뜬 그래피티(graffiti·스프레이 페인트로 벽면과 교각 등에 거대한 그림이나 낙서를 그리는 예술 행위) 작품이 나타났다.

하지만 뮤지컬 포스터를 그대로 베끼진 않았다. 찢긴 프랑스 국기(삼색기)를 배경으로 한 코제트의 표정은 더욱 절망적이다. 아마도 발밑에서 터진 최루가스 때문인 듯하다. 그래피티 왼쪽 하단에는 QR코드가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프랑스 경찰의 북부 칼레 난민촌 소개 작전을 담은 7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5일 불도저와 고무탄, 최루탄을 동원해 ‘정글’로 통했던 난민촌을 밀어버리고 난민들을 쫓아냈다.


25일 BBC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작품은 얼굴 없는 ‘예술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뱅크시(Banksy)의 최신작이다. 영국 출신의 뱅크시는 지난달에도 유럽의 난민 정책을 꼬집는 벽화를 그렸다.

스티브 잡스가 한 손에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들고 어깨에는 봇짐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는 장면이다. 애플 창업자로 세계 정보기술(IT)계 판도를 바꾼 잡스 역시 시리아 난민 출신임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뱅크시는 이전부터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강한 그래피티를 그려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억압정책을, 분리장벽 너머의 풍경과 당나귀까지 검문하는 이스라엘 군인으로 풍자했다.

크레파스가 장전된 기관총을 쏘는 소년병과 꽃을 던지는 반정부 시위대를 묘사한 작품도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뱅크시의 예술적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뱅크시는 도시를 캔버스로 삼아 현대 사회의 허위의식을 비꼬고 조롱한다. 대영박물관에 몰래 원시인이 쇼핑하는 모습이 담긴 돌 작품을 전시하는가 하면 미국 자연사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등에도 풍자 메시지가 가득한 작품들을 진열시켰다.

1990년부터 작품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얼굴 없는 예술가로 통한다. 밤새 몰래 작업한 뒤 이튿날 자신의 웹사이트(http://banksy.co.uk)에 작품을 올리는 식이다. 뱅크시는 2010년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를 연출했는데 이때도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아 1974년생 브리스톨시에서 사진 복사기 기계공 아들로 태어났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그는 2013년 10월 미국 매체 빌리지보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은 예술을 하길 원한다”며 “길거리는 나의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송민섭 기자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