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정몽주 詩에서 明 남경行 사신의 길 밝혀

바람아님 2016. 2. 19. 00:42

동아일보 2016-02-18


이승수 교수 ‘남경사행’ 연구… 시 속 지명-위치 암시 단어 분석



‘옛 초나라 산천을 지나가면서/수나라 적 궁궐을 상상해본다/지난날 흥망을 뉘 탄식하리오/오늘날의 번화만 누리면 그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같은 정서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1386년 중국 양주(揚州)에서 쓴 시다. 측근에 의해 살해된 수 양제의 사연을 떠올리며 망한 나라의 흥망을 따질 것 없다는 내용이다. 불과 6년 뒤 고려가 망하고 정몽주 자신이 이방원 부하의 철퇴에 맞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것은 몰랐던 것이리라.

당대 최고 엘리트 관료였던 정몽주는 고려와 신흥 강국 명의 외교 갈등 시기 세 차례나 당시 명의 수도 남경(南京·현 중국 난징 시)에 사행(使行)을 다녀왔다. 육·해로로 왕복 8000리가 넘는 노정은 어땠을까. 정몽주가 사행 중 틈틈이 남긴 60여 수의 시에 착안해 여로를 복원한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한양대 국문과 이승수 교수는 ‘민족문화’ 최근호에 게재한 ‘1386년 정몽주의 남경 사행, 노정과 시경’에서 시에 나오는 지명과 위치를 암시하는 단어를 바탕으로 그의 사행로가 1394년 명에서 편찬된 ‘환우통구(환宇通衢)’에 나온 역로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객사의 나그네를 뉘 찾아주리/나지막 읊조리는 밤은 깊어라…’

정몽주가 사신의 내면을 드러낸 시 ‘객야재구서역(客夜在丘西驛)’이다. 구서역은 현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랴오란(蓼蘭) 진에 있어 그가 이곳을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특별한 공간 체험을 계기로 남겨진 정몽주의 이들 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희소할 뿐 아니라 높은 미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