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2-24 03:00:00
佛서 환수한 외규장각 의궤 분석… 연구 책임맡은 이재정 연구관
“방대한 흉례편 물질사 연구에 유용”
“목노비(木奴婢)와 목악공(木樂工)을 영구히 쓰지 말라.”
1751년(영조 27년) 효순현빈(孝純賢嬪)의 장례 절차를 기록한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孝純賢嬪禮葬都監儀軌)’에는 영조의 독특한 전교(傳敎)가 책머리에 등장한다. 효순현빈은 영조의 며느리로, 10세에 요절한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아내다. 목노비와 목악공은 나무를 깎아 만든 부장품으로, 경비를 아끼기 위해 영조가 부장(물품을 무덤에 함께 묻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비 등의 국장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흉례(凶禮)의궤에서 왕이 비용 절감을 지시한 것은 영조가 유일하다. 왕권의 지엄함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국장은 다른 어떤 국가행사보다 거창하게 치르는 게 상례였다. 효순현빈에 대한 영조의 관심이 부족해서였을까.
실제는 정반대다. 영조실록에 보면 영조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자식이 있으니 자부(子婦)로는 현빈이고, 딸은 화평옹주다”라고 말했다. 특히 현빈이 죽은 뒤 신하들과 시호를 논의할 때 영조는 “한밤중 현빈이 신도 안 신고 내가 좋아한 밤을 직접 삶아온 적이 있다”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아끼는 며느리였지만, 평소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일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한 영조는 공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백성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던 영조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려고 내린 전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사연은 2011년 5월 프랑스로부터 환수한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연구 분석하면서 알 수 있게 됐다. 박물관 측은 ‘외규장각의궤 학술총서3 흉례Ⅰ’을 최근 내놓았다. 박물관 고고역사부를 중심으로 9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이재정 연구관은 “국장 절차를 기술한 흉례의궤는 가례나 빈례 등 다른 국가행사에 비해 분량이 방대하다”며 “외규장각의궤에서 흉례편은 89종 163책으로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궤는 그동안 학계의 관심이 부족해 연구 실적이 부실한 편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당대 사료들과 중복된 내용이 적지 않은 데다 정형화된 서술이 한계로 작용한 것.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국장에는 최고의 장인과 화원들이 부장품 제작 등에 참여했다”며 “관찬 사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물질사 연구를 위해 의궤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이달 1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uigwe.museum.go.kr)에 외규장각의궤 전문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를 공개했다.
김상운 기자
“방대한 흉례편 물질사 연구에 유용”
외규장각 의궤를 연구, 분석한 이재정 연구관.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751년(영조 27년) 효순현빈(孝純賢嬪)의 장례 절차를 기록한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孝純賢嬪禮葬都監儀軌)’에는 영조의 독특한 전교(傳敎)가 책머리에 등장한다. 효순현빈은 영조의 며느리로, 10세에 요절한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아내다. 목노비와 목악공은 나무를 깎아 만든 부장품으로, 경비를 아끼기 위해 영조가 부장(물품을 무덤에 함께 묻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비 등의 국장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흉례(凶禮)의궤에서 왕이 비용 절감을 지시한 것은 영조가 유일하다. 왕권의 지엄함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국장은 다른 어떤 국가행사보다 거창하게 치르는 게 상례였다. 효순현빈에 대한 영조의 관심이 부족해서였을까.
실제는 정반대다. 영조실록에 보면 영조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자식이 있으니 자부(子婦)로는 현빈이고, 딸은 화평옹주다”라고 말했다. 특히 현빈이 죽은 뒤 신하들과 시호를 논의할 때 영조는 “한밤중 현빈이 신도 안 신고 내가 좋아한 밤을 직접 삶아온 적이 있다”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아끼는 며느리였지만, 평소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일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한 영조는 공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백성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던 영조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려고 내린 전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사연은 2011년 5월 프랑스로부터 환수한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연구 분석하면서 알 수 있게 됐다. 박물관 측은 ‘외규장각의궤 학술총서3 흉례Ⅰ’을 최근 내놓았다. 박물관 고고역사부를 중심으로 9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이재정 연구관은 “국장 절차를 기술한 흉례의궤는 가례나 빈례 등 다른 국가행사에 비해 분량이 방대하다”며 “외규장각의궤에서 흉례편은 89종 163책으로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궤는 그동안 학계의 관심이 부족해 연구 실적이 부실한 편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당대 사료들과 중복된 내용이 적지 않은 데다 정형화된 서술이 한계로 작용한 것.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국장에는 최고의 장인과 화원들이 부장품 제작 등에 참여했다”며 “관찬 사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물질사 연구를 위해 의궤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이달 1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uigwe.museum.go.kr)에 외규장각의궤 전문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를 공개했다.
김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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