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는 약속을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 상하이에선 동지의 어린 딸에게 “생일날에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약속 당일 아침에 급한 전갈이 날아왔다. 일본 헌병들이 체포하려고 쫙 깔려 있으니 빨리 피신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소녀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동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일에 참석하고 돌아오다 일본 헌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후 모진 감옥 생활 끝에 죽음을 맞았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깨어나서 반성하라.” 청년들에게 이렇게 외친 안창호는 그 말을 죽음으로 지켰다. 작은 약속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다니! 보통 사람으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창호가 진실을 귀하게 여긴 것은 그것이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말했다. 인격혁명을 통한 자아혁신이 자기개조이고, 그것이 민족개조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서울 강남 도산공원 지하에 잠자던 안창호의 옛 묘비가 43년 만에 제자리를 찾는다는 소식이다. 서울시가 예전 묘지가 있던 망우리공원으로 묘비를 옮겨 3·1절에 제막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 묘비는 1973년 새로 조성된 도산공원으로 묘가 이장되면서 공원 도산기념관 지하에 보관돼 왔다. 반세기 가까이 독립영웅의 숨결을 칠흑의 어둠에 방치한 우리의 무심이 가슴 아프다.
내일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족이 떨쳐 일어난 3·1절이다. 안창호는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 사랑의 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 ‘거짓 없는 인격’이 그것이다. 거짓이 마치 진실의 동의어처럼 변질된 세태에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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