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2013.12.03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필자가 『인민의 탄생』(2011) 후속작인 『시민의 탄생』을 출간하면서 가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덧붙이고 싶다. ‘그때보다 더 열악하다’고.
한국을 두고 벌어지는 극동정세가 그렇고, 그와는 아랑곳없이 터지는 내부 분열이 그렇다.
누군가는 항변할 것이다. 그래도 백 년 동안 힘을 길렀는데 오늘의 한국은 구한말 조선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4강은 한국이 커진 것보다 더 커졌고, 북한 변수가 돌출한 이 시대 역학구도에서
한국의 입지는 한없이 쭈그러졌다고. 내부 분열? 당시에는 분열상이 조정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시민사회 전반을 갈라놓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면 중국·일본이 겹겹이 쳐놓은 방공식별구역으로 바짝 좁혀진 바다와 거기에 갇힌 한국을 보라,
4강 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방공식별구역 경쟁은 용암처럼 꿈틀대는 극동정세에 잠재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일 뿐이다.
한국은 두 개의 분절선이 엇갈리는 위치에 몰려 있다. 한·중과 일본을 가르는 ‘역사대치선’, 한·미·일과 중국·북한을 가르는
‘군사대치선’이 한국의 지정학적 주소를 모순적으로 만들었다.
정세 변화에 따라 눈치를 살펴야 할 판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모순의 딜레마를 증폭한다.
아베 정권은 역사대치선의 중추신경인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곧장 미국 뒤에 숨었는데, 한국은 중국과 위로주를 나누다가
얼떨결에 군사대치선으로 복귀해야 할 형편이다.
제주도 남쪽 상공에 신예전투기들이 난무해도 한국은 구경할 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구중궁궐에 갇혀 ‘정의의 대국’이 오기를 고대했던 고종(高宗)과, 틈새전략도 구사하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이 무엇이 다른가.
‘난폭한 북한’이 불거지고 여기에 영토분쟁이 겹치면 한국의 운명은 강대국 역학에 좌우된다.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4강 역학에서 종속변수다.
두 개의 대치선에 끼어 쩔쩔매는 판에 내부 분열은 고종 때보다 더 심하다.
일 년간 정치권은 집요한 싸움밖에 한 일이 없고, 분쟁에 시달리던 시민사회는 끝내 쪼개졌다.
종교계 일부가 듣기에도 거북한 대통령 하야 선언을 하고 나설 정도니 부지불식간 정권의 거버넌스는 금이 갔다.
회복해도 영(令)이 설지 의문이다. 국민의 건강한 판단력도 마비상태다.
명박산성보다 더 견고한 ‘요새정치’ 앞에서 지쳤고, 야당과 비난세력의 ‘돌격정치’에도 넌더리가 났다.
대통령 하야 요구가 정말 민주적인지, 120만 개 부정 댓글에 더해 뭐를 더 폭로할지 모를 판국에 법률 판단에 맡기자는
‘회피정치’가 과연 민주적 리더십인지 헷갈린다.
정치권 분열, 약한 국력, 쪼개진 사회, 비전의 소멸, 그리고 열강의 충돌, 이것의 결말은 민족의 파멸이었다.
110년 전 대한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파국드라마, 그 악몽은 오늘날 한국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을 냉철히 인정하자.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을 이만큼 키운 20세기 패러다임은 끝났음을, 우리는 막힌 골목에 와 있음을 말이다.
산업화 세력이 그토록 자랑하는 성장엔진은 구닥다리가 됐고, 민주화 첨병이던 재야세력은 기득권집단이,
강성노조는 이익집단이 됐다.
‘사람투자’에 치중한 성장패턴의 유효성은 오래 전 끝났음에도 보수와 진보 모두 새로운 모델 만들기를 저버렸다.
‘사람투자’에서 ‘사회투자’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팽개쳤다.
연대와 신뢰를 창출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사회투자의 요체이거늘, 원자화된 개인주의와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현실을
부추기고 방치했다. 양극화와 격차사회의 행진을 막지 못했으며, 사회조직은 승자독식을 허용했다.
미래가 막막한데 시민윤리와 공동체정신? 글쎄, 분쟁이 만연된 한국 사회에서 누가, 어떤 평범한 시민이 어렵고 못사는
사람들을 걱정할까?
진영논리로 쪼개진 이기적 시민들의 어설픈 국가 운명을 극동의 강국들이 자국 이익에 맞춰 이리저리 재단하는 중이다.
너무 비관적 진단이라고? 아니다. 구한말에는 그래도 민지(民智)를 모을 생각은 했다.
지금은 민지를 쪼개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유길준이 강조한 ‘시세(時勢)와 처지(處地)’는 이 시대에 더 절실한 교훈이다.
망국의 아픔이 있는 민족은 이보다 더 비관적 진단을 안고 살아야 한다.
대한제국의 패망이 식민지, 전쟁, 독재를 치르게 했듯이 ‘침몰하는 한국’의 유산은 당대의 것이 아니다.
우리 자녀들과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짐이다.
망국을 부르는 전면전에 나서기 전에 한번 자녀들의 얼굴을 보라.
그 맑고 순진한 표정이 그것을 허락한다면 다 같이 싸워 끝장을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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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 "한국 현실, 구한말 패망 직전과 흡사"(종합) (출처-연합뉴스 2013-11-29 ) | ||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이 1900년대 대한제국이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거의 동형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내외적 상황과 지금의 내외적 상황이 100여 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등 현재 돌아가는 판세가 100여 년 전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내부의 분열과 갈등 속에 허우적대며 기운을 탕진하고 있다고 송 교수는 우울해했다. 최근 서울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여기에 통제 불능의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생겼기 때문에 훨씬 더 악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도 20세기 성공 신화에 안주한 채 미래 담론이 실종됐다"면서 "20세기 성공의 끝 자락에 와있음에도 20∼30년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의 논의는 전혀 없다"고 한탄했다. 당면한 현실은 100여 년 전 국가가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종북(從北) 발언 문제도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더구나 민주화도 25년이 지난 상태라면 종북이라는 것을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 발언이 나오는지 조금은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죠. 양쪽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해가 될만한 말이나 험한 말은 자제하는 게 맞습니다. 다들 자해하는 수준까지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보다는 20∼30년 뒤의 한국의 비전을 놓고 얘기하면 현재 자기 입장을 자제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끝장을 보고 싶어하는 이런 태도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죠." 결핍됐다고 답답해했다. 왜 그런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그 연구의 첫 결과물이 2011년 내놓은 '인민의 탄생'이다. 이번에 나온 '시민의 탄생'은 그 후속작이다. '인민의 탄생'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한 봉건 질서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인민,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민란에 휩싸이거나 기존 질서에 모순을 느끼게 된 인민을 다뤘다. 공론장 분석을 통해 추적했다. 서로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격돌하는 경험을 하면서 타협과 절충의 문화가 싹텄다"며 "그러면서 시민성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움직여 나가야 한다는 집단적인 중지를 모아나갔다"고 했다. 명령을 부여받았다"면서 "서양의 시민이 국가와 대결 구도를 통해 획득했던 시민성을 키워나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민족주의로 빨려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얼어붙었다. 시민사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와 책임의 문제, 사회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산업화 때 유보당한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체제에서 빼앗긴 임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시민성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으니 시민성의 핵심인 공익이라는 책임의식, 자신의 계급적인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공공선을 위해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재산 축적과 출세를 향해서만 줄달음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머리만 비대해졌지 내부 정신은 비어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이라고 짚었다. 진단만 올바르게 내린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결핍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힌 이 책이 한국 내 갈등구조를 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과 더불어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귀국 후 한림대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로 재임했고, 199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조교수로 임용돼 학과장과 사회발전연구소장,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 등이 있다. |
==============================<< 반 론 >>===============================
송호근 칼럼 "불길한 망국예감"의 가벼움을 논한다.
문자매체 등에 설령 이견이 있더라도 댜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가급적 논평을 자제하나
아래 송호근 칼럼 "불길한 망국 예감"의 가벼움에 글을 든다.
1. 전반적 논지 즉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 공감한다.
2. 4강의 틈바구니에 북한 문제까지 겹치고 이념분쟁에 우리 상황이 어렵다는 것도 동의한다.
3.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이 구한말 망국상황과 일치한다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본인이 구한말 시대에 정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칼럼의 논거는 너무나 비약이 심하다.
이런 비약에 근거한 망국예감이란 논지는 더 말할나위 없다.
4. 칼럼은 현 4강 세력이 구한말 당시보다 더 커졌다고 하는 데, 간단한 경제지표만 봐도 아니다.
구한말보다 훨씬 상황이 개선되었을 것을 추정되는 1963년 한국의 GDP는 일본의 1/18, 중국의 1/13,
미국의 1/165이었으나, 2014년 일본의 1/3.3, 중국 1/7.3, 미국 1/12.4로 급증했다.
일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의 1/1.3, 미국의 1/2이다.
칼럼에서 논거로 든 방공식별구역은 위성으로 전 지구를 감시하는 현실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5. 또 칼럼은 "사람투자’에 치중한 성장패턴의 유효성은 오래 전 끝났고 연대와 신뢰를 창출할 ‘사회투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자본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나 사람투자와 사회투자를 대립적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의문이다.
승자독식을 넘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선 사회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바른 교육과 투자가 중요하지 않을까?
6. 칼럼을 쓰신 분은 본인이 평소 존경하는 분이지만, 칼럼의 가벼움이 안타깝다.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불길한 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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