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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바람아님 2013. 6. 15. 06:13

금발 머리,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매혹적인 붉은 입술, 반쯤 감은 눈….

20세기 최고 ‘섹스 심벌’이었던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섹시 아이콘으로 남았다. ‘백치미인’의 대명사였던 먼로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대중들에게 섹시한 미인으로 보이려 애썼고, 그 시선을 즐겼을 뿐이다.”

세기를 뛰어넘어 여성들의 ‘워너비(wanna be·닮고자 하는 대상)’였던 먼로의 어린 시절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87년 전(1926년) 오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노마 진’이었다. 우울증 환자였던 어머니를 떠나 고아원과 양부모집에서 생활했다. 16세에 결혼했지만 4년 만에 헤어졌다.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 생활을 하다가 20세기폭스사와 계약하며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몇 편의 영화 단역을 거쳐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주연을 맡은 뒤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 미국 프로야구단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 조 디마지오와 결혼하며 배우 인생의 절정을 맞았다.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치마가 날리는 사진으로 유명한 ‘7년 만의 외출’(1955)이 이때 작품이다.

이후 먼로의 염문은 이어진다. 디마지오와 이혼하고 1956년 극작가 아서 밀러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5년 만에 또다시 파경을 맞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랭크 시내트라, 이브 몽탕, 존 F 케네디 형제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

1962년 8월 어느 날, 신문에 충격적인 뉴스가 실렸다. “마릴린 먼로, 수면제 먹고 자살.” 그의 나이 36세 때였다. 케네디 형제와의 열애설과 관련, 미국 보안당국에 의해 제거됐다는 타살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