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천렵하고>
【시조】- 김유기(金裕器)
오늘은 천렵(川獵)하고 내일은 산행(山行)가세.
곳다림 모릐하고 강신(降神)을랑 글피하세.
그글픠 변사회(邊射會)할 제 각지호과(各持壺果)하시소.
【어구 풀이】
<천렵(川獵)> : 그물로 냇물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
<산행(山行)> : 사냥
<곳다림> : 화전(花煎). 진달래나 국화가 필 때, 그 꽃잎으로 적을 부치거나 떡에 넣어서 먹는 잔치놀이
<모릐> : 모레(再明日)
<강신(降神)> : 제사에 향을 피우고 제주(祭酒)를 올리는 일. 여기서는 신령을 맞기 위해 제사하는 강신제(降神祭)인 듯.
<글픠> : 글피(三明日).
<변사회(邊射會)> : 활쏘기 모임.
(호과(壺果)> : 술과 과일
<각지호과(各持壺果)> : 제각기 술과 과일을 가져 옴
【현대어 풀이】
오늘은 냇가에서 고기잡이하고, 내일은 산으로 사냥을 가세.
화전놀이는 모레 하고, 강신제는 글피쯤 하세.
그 다음날 활쏘기를 할 때는 제각기 술과 과일을 가져오소.
【감상】
이 시조는 천렵, 사냥, 화전놀이, 강신제, 변사회 등 우리 민족의 민족놀이를 한눈에 보는 것 같다.
오늘과 같이 바쁜 세상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여유 있고 자연을 즐기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들이 단순한 오락을 위한 놀이가 아니라 그 속에는 풍류가 있고, 예가 있고,
수련이 곁들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지호과(各指壺果)하라는 말에서 서로가 대등한 처지에서
즐기고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고대 중국의 교양 내지 교육 덕목으로 예(禮)ㆍ악(樂)ㆍ사(射: 활쏘기)ㆍ어(御: 말타기)ㆍ서(書)ㆍ
수(數)의 육예(六藝)가 숭상되었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이러한 중국적 교양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우리의 고대나 중세에 이런 유의 교양이 전래의 풍습과 융합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 시조는 조선 후기의 풍속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음미할 문제는 이 시조의 표현 내면에 있는
풍속으로, 놀고 즐기는 조선 후기인들의 정신과 태도다. 얼른 보고 오늘ㆍ내일ㆍ모레ㆍ글피에 연이은
놀이이며, 향락의 연속으로 이해하지는 말자. 그것은 다만 시조적 표현의 한 기교일 뿐, 각각 경우와
시기를 달리하는 독립된 민속인 것이다.
핵심은 비록 한문투이나 ‘각지호과(各持壺果)’에 있다. 이 각지호과의 뜻은 형식상으로는
‘변사회(邊射會)’에 작용하는 강신(降神)놀이의 모든 경우를 지배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고 그 즐거움에 스스롭고자 한, 한 행위의 상식이다. 독립불의(獨立不倚)를 신조로 산
중세인의 의젓한 심사가 엿보인다. - 이상보 : <명시조감상>(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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