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스산한 날씨에 "겨울 풍경을 그린 옛 그림" 해설 소개

바람아님 2013. 1. 10. 11:53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40] 눈보라 치는 밤, 나그네의 가슴은 서러웠네
(출처-조선일보, 손철주 미술평론가)
 


새해 들어 추위가 모질다. 눈이 자주 내리고 바람이 나우 매섭다.
옛 그림에 겨울을 그린 풍경은 쌔고 쌨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 맹추위로 따져 첫손가락에 든다.
화면 가득 뼈저린 겨울 한기(寒氣)가 몰아친다.
보는 이마저 몸을 옹송그릴 정도다.

          (주)옹송그리다 : [동사]     1.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옹그리다.
                                                  2.입술을 움츠리어 꽉 깨물다.

 

그림 속에 제목이 있다.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라,
그 뜻은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이다.
당나라 유장경(劉長卿)의 오언시(五言詩)에서 따온 제목인데,
화가는 그 시를 곧이 곧대로 그림에 옮겼다.
그것도 그림 위에서 아래로,
시가 한 구절씩 차례로 펼쳐지는 구도다.

 

 

첫 시구(詩句)는 이렇다.
'해 저물어 푸른 산은 멀고(日暮蒼山遠)'.
그림 맨 위를 보면, 꺼무레한 하늘빛이 어느덧 밤을 알린다.
푸르던 산봉우리가 멀어진 것은 하얗게 눈이 내려서다.
눈 덮인 산은 키 큰 수목만 듬성듬성하다.

 

다음 구절은
'날이 차가워 초가집 초라하구나(天寒白屋貧)'다.
산 아래 찌그러진 초가 한 채가 쓸쓸하다.
거센 바람은 집 앞 나무들의 허리를 사정없이 꺾어버린다.

 

이어지는 구절이
'사립문 밖 개 짖는 소리 들리자(柴門聞犬吠)'다.
얼기설기 엮인 사립짝 사이로
검둥개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다.

 

마지막 구절이 바로 제목인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風雪夜歸人)'이다.
그림 맨 아래, 아이와 함께 나그네가 걸어간다.
지팡이를 짚은 그의 등짝이 꾸부정하다.


눈보라 날리는 이 밤에 누군가 싶어 개는 사납게 컹컹거린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나그네의 귀로(歸路)가 고단해 보인다.

그린 이는 조선 화단에서 미치광이로 소문났던
화가 최북(崔北1712~1786 무렵)이다.


그는 자기를 몰라주는 세상에 분노해 스스로 한쪽 눈을 찔렀고
그림 팔아 술을 사먹은 겨울날, 눈구덩이에 쓰러져 죽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화가의 이력이 그림과 겹친다.
눈보라가 생애를 쓸고 간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날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시려 불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