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태평로] 우리에게는 왜 스타 기업인이 없나

바람아님 2016. 4. 11. 10:14

(출처-조선일보 2016.04.11 조형래 산업2부장)


조형래 산업2부장 사진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혁신가로 꼽히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교과서적인 경영자는 아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독설가로 유명하다. 
직원들을 향해 "당신은 게으른 겁니까, 아니면 능력이 부족한 겁니까"라고 쏘아붙이거나, 
보고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B팀이 만든 보고서 말고 A팀이 만든 보고서를 가져와. 
내가 B팀 보고서를 보느라 시간을 낭비해야 하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역외 탈세 혐의로 구설(口舌)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세금을 내기 싫어서 일부러 이익을 적게 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기차 혁신의 주역인 일론 머스크도 못지않다. 
그의 전처(前妻)는 "같이 지내기 불편한 괴짜에 사회 부적응자이며, 아내를 부하 직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돈을 까먹기만 하는 그의 전기차 사업은 재무적인 관점에서 보면 C학점을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게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황당하기까지 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열정은 많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주 개발 사업이다. 
처음엔 괴짜 부자들의 호사로운 취미로 여겨졌지만, 우주선 발사 로켓을 재활용해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이는 실험에 
성공하면서, SF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우주 관광을 현실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한 번 쓰고 버렸던 로켓을 우주 공간에서 
재점화시켜 로켓이 중력을 견디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게 한 발상의 전환은 기업가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들에서는 이런 스타 기업인이 사라져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기업 오너나 전문경영인이나 할 것 없이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경영 숫자만 챙기는 것이 
최고의 미덕(美德)이 되어 버렸다. 미래를 위한 공격적인 신기술 개발이나 투자는 뒷전에 밀렸고 재무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단기 성과주의가 절대 가치가 됐다. 
CEO가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거나 CEO 개인을 브랜드화하는 것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입버릇처럼 "올해도 경영 환경이 더 나빠질 것이다. 
고통을 감수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말만 되풀이한다. 
대기업의 대안 세력으로 등장한 벤처기업들도 대기업을 욕하면서 대기업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은 말로는 "우리는 재벌과 다르다"고 외쳤지만, 경영권 유지와 상속을 위해 회사를 쪼개고 붙이고, 
힘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는 모습은 지탄받던 재벌과 다를 게 없다.

상대적으로 탄탄해 보이는 미국 경제도 사실은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려 10조달러대에 이르는 인수·합병으로 미국 거대 독점기업의 
수익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커졌지만 정작 근로자와 중소·중견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가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황 때마다 등장하는 스타 기업인들과 이들을 발굴해 키우는 
산업 생태계 덕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