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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그 섬이 뭐길래? 이집트인을 화나게 했나?

바람아님 2016. 4. 14. 00:37
SBS 2016.04.13. 12:05

이집트가 때아닌 영유권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논쟁 대상은 홍해에 있는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입니다. 두 곳 다 무인도입니다. 이 무인도 두 곳을 이집트 정부가 사우디 왕국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살만 사우디 국왕의 이집트 방문에 맞춰 선물을 준 겁니다. 이후 이집트 내에선 ‘상납이다, 조공이다, 굴욕이다’며 온갖 비난과 풍자, 조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도대체 수십 년간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인 무인도가 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인지, 또 이집트 정부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무인도를 사우디에 넘기는 이유는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 아카바 만의 길목

티란과 사나피르 섬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사우디의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놓인 아카만의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섬입니다. 티란은 우리나라의 울릉도, 사나피르는 여의도 넓이 정도가 됩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풀 한 포기조차 없는) 섬이지만, 지도상으로만 봐도 폭이 30킬로미터 정도인 아카바 만의 입구에 놓인 위치 때문에 지정학적, 특히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됩니다.

티란 섬은 이집트의 유명한 휴양지인 샤름 엘 세이크 (지난해 IS의 테러로 시나이 반도에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가 이륙한 곳)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위칩니다. 폭이 좁은 해협을 오가는 선박이나 함선을 통제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죠.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으로서는 인도양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선 이들 섬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이집트와 사우디, 이스라엘, 요르단 사이에 관할권을 놓고 옥신각신 논쟁이 끊이질 않은 곳입니다.


●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네 거 같은 땅’

티란과 사나피르 섬은 ‘국제적’으로는 이집트 영토로 인정됩니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보면 티란은 이집트에 가깝고 사나피르는 사우디에 가깝습니다.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차라리 누가 살기라도 하면 좀 더 쉽게 판단이 들 텐데 이건 뭐 풀 한 포기 없는 무인도니 상식적인 선에선 판단이 어렵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티란과 사나피르 섬이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근거로 1906년에 맺어진 협정을 제시합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와 영국은 아카바만을 사이에 두고 대립했습니다. 오스만튀르크는 아라비아 반도를 차지했고, 영국은 이집트를 보호령이란 명분으로 두고 아프리카 침탈의 전진기지로 삼았습니다.


이때 양국이 국경선을 나누는 협정을 맺었는데, 해상에 그려진 국경선에 따르면 티란과 사나피르가 이집트에 속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집트는 1922년 독립을 했고, 사우디는 그보다 10년이 늦은 1932년에 건국됐습니다.

뒤늦게 이들 섬에 대한 영토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군사력도 오일머니도 없는 때라 힘이 약한 사우디였습니다. 더구나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나라를 세우면서 사우디는 더 큰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당시 군사 강국이었던 이집트에 이스라엘 견제를 이유로 두 섬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소유권 분쟁은 6일 전쟁으로 잘 알려진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벌어집니다. 이때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해상작전을 차단하기 위해 아카바만 봉쇄에 나섭니다. 티란 섬에 군대를 주둔시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무지막지한 화력을 앞세워 손쉽게 티란 섬을 차지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시나이 반도까지 손에 넣죠. 지금의 요르단 강 서안처럼 이스라엘 땅처럼 군대를 주둔시켜 강제 점령합니다.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대신에 이스라엘은 아카바만과 홍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안전과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티란과 사나피르 섬에 이집트군은 영구히 주둔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러면서 티란과 사나피르 섬은 이집트 땅이긴 하지만 이집트인이 손댈 수 없는 땅이 됐죠.


● 이집트 정부 “잠시 맡겨놓은 땅 돌려줄 뿐”

이집트 정부는 두 섬의 관할권 양도 이유를 1950년대 이스라엘의 군사적 위협에서 아랍을 방어하기 위해 위탁을 하다가 이제 사우디가 군사적인 역량을 갖췄기에 돌려준다고 말합니다. 즉, 원래 두 섬이 사우디의 것이었다는 겁니다. 양도가 아닌 반환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이집트 국민을 더 분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방송진행자인 이브라힘 에이사는 “자라면서 배운 것과 정반대로 정부가 행동한 데 이집트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정말 끔찍스럽고 걱정스러운 결정이다”라며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더욱이 이집트의 학교에서는 이 섬들을 이집트의 영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 땅이라고 가르치고서는 갑자기 내 땅이 아니라는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엘시시 군사정권에 축출당한 무슬림형제단은 “한 줌의 돈 때문에 이집트 국민의 자산을 포기할 권리를 누가 정부에게 줬느냐”며 두 섬의 이양이 주권 포기라며 날 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양 발표가 있고 나선 이틀 뒤 (4월 10일)에는 항의 시위를 하던 시민 10명이 이집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가장 민감한 쪽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집트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유일한 나랍니다. 반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국교조차 맺어지지 않은 나랍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가 자칫 두 섬의 관할권을 되찾으면서 자국 선박의 아카바만 통행을 막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1979년 이집트와 맺은 평화협정은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이집트의 뜻은 존중하고 대신에 아카바만 통행을 자유롭게 하기로 한 협정내용 역시 유효하니 우리는 걱정 없이 아카바만을 지나다녀도 되는 거지? 라고 묻는 겁니다.

일단 사우디도 분란을 원하지는 않는 모양샙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이 이번 이양으로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32km 홍해 대교 건설”

사우디는 두 섬의 이양과 동시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사우디와 이집트를 잇는 초대형 다리 건설입니다. 길이만 32km로 우리나라 영종대교 7개를 이은 것보다 더 깁니다. 공사비는 17억달러 입니다. 이 다리의 중간 거점이 바로 이번에 이집트로부터 받은 ‘티란 섬’입니다.

사우디는 건설될 다리를 국왕의 이름을 따 ‘살만대교’로 지었습니다. 살만 대교 건설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물류와 교통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사우디에서 육로로 아프리카를 가려면 눈엣가시같은 ‘이스라엘’을 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담쌓고 지내는 사우디에 아프리카와 육로 무역은 불가능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시나이 반도가 IS 때문에 불안한 여건에서는 더더욱 길이 막힌 상탭니다. 이런 상황에 턱 하고 아프리카에 다리를 놓는 겁니다. 그야말로 앓던 이를 뽑는 듯한 기분일 겁니다. 유가 하락 정세에 탈 오일시대를 고민해야 하는 사우디에 아프리카로 통하는 육로 건설은 획기적인 활로 개척의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앙숙 이란이 핵 협상 타결로 족쇄가 풀린 뒤 발 빠르게 경제적·정치적 확장하는 상황에서 사우디 역시 영향력 확대를 위한 발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아프리카를 잇는 ‘살만 대교’ 건설은 보약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이 구상하는 신실크로드 건설의 기점으로 사우디가 역할을 담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우디다운 무모하면서도 거대한 교량 건설이지만 잠재적 효과는 충분히 기대할만합니다.


사실 티란 섬을 통해 사우디와 이집트를 잇는 다리 건설은 2005년에도 계획됐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무산이 됐죠. 근데 이제 내 땅이 됐는데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아프리카와 육로 교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된 거죠.


● 목구멍이 포도청, 땅이 중요해?

이집트가 애지중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계륵’ 수준은 될 땅을 뚝 하고 사우디에 떼 준 이유는 역시 ‘돈’입니다. 주권 포기에 상납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섬을 양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돈이 급하다는 겁니다.

최근 이집트의 경제 상황은 최악의 수준입니다. 3대 외화 수입원이 관광산업, 수에즈운하 통행료, 근로자 송금인데 이 세 가지 다 엉망입니다. 지난해 10월 시나이 반도에서 러시아 여객기 추락사고 이후 관광수입은 반 토막이 났습니다.


이집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관광수입은 전년도 동기간 대비 40%가 추락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도 마찬가집니다. 전 세계 주요인사를 초청해서 야심차게 제2 수에즈 운하를 개통했지만 국제 경기 하락으로 교역량이 줄면서 수입은 한 달에 200억 원 가량 줄어든 실정입니다. 리비아가 IS 때문에 어수선해지면서 근로자들도 대거 귀국해서 근로자 송금도 신통치 않습니다.


시민혁명 이전의 반 토막이 난 외환 보유고는 165억 달러라고 하지만 실제는 더 적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관측입니다. 오죽 외환이 없으면 수입규제까지 하겠습니까? 달러 없는 나라의 돈은 보증이 안 됩니다. 당연히 환율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 온 3년 전만 해도 암시장에서 1달러에 6.7 파운드였던 환율은 이제 9를 넘어 10파운드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경제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이집트에 환율 인상은 치명타입니다. 물가 인상으로 당장 서민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돈이 워낙 없다 보니 아랍권 권력자들이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수단 중 하나인 정부보조금도 대폭 삭감에 나서는 실정입니다. 이집트 정부는 내년 에너지 보조금을 40% 이상 삭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유류와 전기료가 두 배는 뛸 거라는 예상입니다. 예멘 내전이 정부의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비롯된 걸 뻔히 아는 엘시시 대통령이 오죽하면 이러겠나 싶습니다.

이런 이집트에 사우디는 동아줄 같은 존재입니다. 시민혁명 이후 사우디는 이집트에 13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내줬습니다. 말이 차관이지 그냥 준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번에도 살만 사우디 국왕은 이집트에 방문해 16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우디 말고 다른 걸프국가들도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 이집트에 주는 돈을 다 합쳐도 사우디 혼자 준 돈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이런 사우디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집트로서는 정말 뭐라도 해야 하는 처지일 겁니다.


티란과 사나피르 섬 이양도 아마 사우디가 먼저 요구한 내용일 겁니다. 이집트의 특성상 공짜로 뭘 먼저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 같아도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일단 던지고 보는 게 이집트인의 거래 방식입니다. 그런 황당한 빈말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끝까지 밀리고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이집트의 섬 이양은 배가 고프다고 제 살을 깎아 먹는 식입니다. 조삼모사와 별다를 게 없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나사르 대통령 시절, 힘 있고 영화로운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이집트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이집트의 경제 사정을 수박 겉핥기 식이라도 아는 1인으로서는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하겠나 하는 측은지심도 들기도 합니다.   

 

정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