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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 따뜻한 동행]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바람아님 2016. 4. 15. 00:21

동아일보 2016-04-14 03:00:00


활짝 핀 꽃들로 세상이 온통 화사한 봄날에 문득 ‘자연과 인간 사이에선 누가 갑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것은 연일 들려오는 ‘갑질 시리즈’ 탓일 게다. 그런 고약한 뉴스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접게 하지만 지난주에 내가 만난 이삿짐 아저씨는 사람에 대한 실망을 다시 희망으로 바꿔주었다.

지난주에 이사를 두 번 했다. 그런데 사무실의 책을 집으로 옮기는 초벌이사에서 이삿짐 아저씨가 얼마나 웃는 낯으로 능숙하게 일을 잘하는지 감탄을 했다. 짐을 실어 나르는 도중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그곳에 갇히고도 “이사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있다”며 느긋하고 태연했다. 기술자가 달려와 비상수단으로 문은 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정상화되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아저씨는 오후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니 급할 것이 없다며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다. 이사를 하다 보면 항상 변수가 많다는 것. 한 번은 이삿짐을 싣고 갔는데 아직 도배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8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며칠 후 본격적인 이사도 그 아저씨에게 맡긴 것은 당연지사. 도움이 될까 하여 아들을 불렀더니 이번에는 아저씨의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난 모양이다. 약정한 이사비용에서 20%를 덜 받겠다고 했다. 아들이 도와주어 일이 수월하게 끝났으니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갑도 없고 을도 없는 정말 기분 좋은 거래였다.

그날 밤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이삿짐 아저씨가 지금 예순 둘인데 일흔다섯까지 건강을 잘 지켜서 일하시는 게 목표래요. 젊은 저도 힘들던데 그렇게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어요.”

어쩌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덕에 호강하고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는커녕 ‘갑질’을 일삼는 사람과 힘든 노동을 하며 살지라도 경우가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삶을 보며 사람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았다.

지금 도처에 봄꽃들이 피고 진다. 매화와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지는 속에 벚꽃이 흩날리고 목련이 하얗게 웃는 봄날, 하마터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뻔했다. 그러나 지는 꽃이 있는 반면 피어나는 꽃이 있듯 악취를 풍기는 한편에서 또한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직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