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의자로 본 國格

바람아님 2016. 4. 22. 08:37
  • (출처-조선일보 2016.04.22 여미영 디자인회사 D3 대표)
여미영 디자인회사 D3 대표직업 탓인지 어느 곳에 가든 가구에 시선이 머문다. 
모양을 살피는 것은 물론 가구가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소통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의자는 주거 공간의 기본 아이템이자 산업화된 디자인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가 있기에 
디자인사 공부에 필수적이다. 때문에 국적을 초월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흔한 대화거리가 된다. 
공공 공간에 놓인 가구들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관람객들이 사용하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플라스틱 의자 
'루이'(Louis, 2000)는 급진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이지만 과거와 연결된다. 
18세기 유행한 루이 14세 의자의 라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의자가 놓이면서 박물관이 
전통에 머물지 않고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미래를 향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들른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직원이 사용하던 의자는 다소 당혹스러웠다. 
누군가가 편의를 위해 임시로 가져다 놓았을 그 의자는 작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카피 된 디자인이라는 독특한 상을 받기도 
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의 봄보(Bombo,1997) 모사품이었다. 
이런 가구들이 국격(國格)을 대표할 수 있는 공공 공간에 아무렇지 않게 놓이는 것은 문제다.

[일사일언] 의자로 본 國格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에서도 불법 복제품들은 종종 발견된다.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의자가 복제품인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나라의 공공기관에 갔을 때 그곳의 TV나 모니터가 너무나 잘 아는 국산 브랜드의 복제품임을 
발견하게 된다면 실망스럽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바로 그 전자제품이 가구가 된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가구를 들여놓는다면 최선이다. 
하지만 유명 디자인을 멋대로 베낀 복제품이 아니라, 정직하게 만든 평범한 제품이라면 합격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