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 호가스의 '혼인 계약'

바람아님 2013. 6. 27. 09:03
  • 여섯 점의 회화로 구성된 '당세풍의 결혼' 시리즈는 18세기 말, 영국 사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화가 윌리엄 
  •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 1764)의 대표작이다. 그는 당시에 흔했던 정략결혼의 폐해를 연극의 한 장면처럼 
  • 펼쳐보였다. '혼인 계약'〈사진〉이 그 첫 장면이다.
  • 양가의 가장들이 앉은 테이블에서는 거래가 한창이다. 풍채 좋은 백작이 정복왕 윌리엄으로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 가문의 족보를 호기롭게 펼쳐보이고 있지만, 통풍으로 못 쓰게 된 그의 오른발은 이미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었음을 
  • 증명한다. 맞은편에 앉아 혼인계약서를 손에 쥔 상인은 딸을 백작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는 대가로 테이블 가득 
  • 금화를 쏟아놓았다. 부유한 상인과 몰락한 귀족은 자식들을 매개로 서로가 간절히 원하던 것, 즉 돈과 권력을 
  • 맞바꿨다.


  • 정작 결혼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화려하게 치장한 예비신랑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불안한 듯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신붓감은 오히려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변호사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들 사이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섬뜩한 메두사가 다가올 불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다섯 점의 회화는 탐욕으로 시작된 이 결혼이 결국은 불륜과 패행을 거쳐 치정살인과 패가망신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제공하는 이 시리즈는 판화로도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호가스는 냉정한 비판의식으로 사회의 이면을 들춰낸 최초의 풍자화가로 꼽힌다.


     <글출처 : 조선일보, 우정아 카이스트 교수·서양미술사>




    '혼인 계약' 큰이미지



    풍채 좋은 백작이 정복왕 윌리엄으로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가문의 족보를 호기롭게 펼쳐보이고 있지만,

    통풍으로 못 쓰게 된 그의 오른발은 이미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었음을 증명한다.

    맞은편에 앉아 혼인계약서를 손에 쥔 상인은 딸을 백작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는 대가로

    테이블 가득 금화를 쏟아놓았다. 부유한 상인과 몰락한 귀족은 자식들을 매개로 서로가 간절히 원하던 것,

    즉 돈과 권력을 맞바꿨다.


    정작 결혼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화려하게 치장한 예비신랑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불안한 듯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신붓감은 오히려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변호사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들 사이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섬뜩한 메두사가 다가올 불행을 예고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