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 프리드리히, 얼음의 바다

바람아님 2013. 6. 30. 10:32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지독한 정적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두꺼운 얼음층이 모든 소음을 삼켰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의 1824년 작 '얼음의 바다'〈사진〉는 차갑고 황량한 그림이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난파돼 얼음 바다 속에 잠겨있는 범선의 일부가 보인다. 충돌의 순간 울려 퍼졌을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이미 산산이 흩어졌고, 인간의 공포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다. 자연은 거칠고 폭력적이며 무심하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얼음바다’


프리드리히는 영국 장교 윌리엄 에드워드 패리경의 극지방 항해기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통과해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북서 항로를 개척해 왔던 패리는 1827년 지구의 최북단까지 항해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패리의 성공보다는 한때 배가 얼음덩어리 사이에 끼는 바람에 맛봤던 좌절을 부각시켰다. 얼음에 갇힌 범선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인간의 도전과 열정은 무모한 과욕에 불과할 뿐임을 보여준다.


프리드리히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잇따라 누이가 죽었다. 곧이어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형이 얼음물 속에 빠진 프리드리히를 구하고 익사했다. 형의 죽음은 프리드리히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얼음의 바다'에서는 악몽 같은 그 기억이 묻어난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의 참상에서 '얼음의 바다'가 떠올랐다.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대재앙이다. 이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처연한 예술 작품이 되어 다시 한 번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릴지 모른다. 

(출처 : 조선일보)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