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철주금은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나타난 철강업계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라며 "원료 등 조달비 삭감과 설비 투자 효율화로 연간 총 200억엔(약 2155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해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촉발된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발 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철강뿐 아니라 조선(造船)·해운·자동차 등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한 산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서 주력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 철강·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신산업 역량도 강화
일본은 1990년대 들어 버블 붕괴와 한국 기업의 부상(浮上)으로 철강·해운 등 주력 산업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02년 당시 일본 철강업계 2·3위였던 NKK와 가와사키제철을 합쳐 JFE홀딩스를 만들었다. 해운업에서도 1999년 나빅스해운과 OSK, 쇼와라인과 NYK를 합쳤다.
일본의 산업 재편은 최근 들어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세계 1위였던 일본 조선업은 이후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받아 3위로 떨어지자 자국 내 인수합병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2013년 유니버설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를 통합해 세계 4위의 JMU를 출범시켰고,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LNG선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합쳐 MI-LNG를 만들었다.
닛신제강을 인수한 신일철주금도 포스코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게 됐다. 세계 조강 생산량 2위인 신일철주금은 지난해 매출(60조원)이 세계 5위인 포스코(58조원)보다 2조원 정도 앞섰지만, 6조원대 매출의 닛신제강을 가져가면서 격차는 더 커지는 것이다. 신도 코세이 신일철주금 사장은 지난달 사원들에게 "올해는 인내·자제의 한 해가 되겠지만, 그 앞의 미래는 세계 어디서나 신일철주금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압도적 위상을 가진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으로 고통이 따르겠지만, 미래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산업 재편은 단순히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거나 인력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경쟁력을 강화했다. 신일철주금은 스미토모금속과 합병 후 조선용 후판 생산을 줄이는 대신 자동차용 특수강판과 부식방지 철강 등 신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이마바리조선도 최근 18년 만에 초대형 독을 신설하고 친환경 선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작년 6월부터 삼성중공업을 제치고 글로벌 수주량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들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시작했으나, 그 과정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뒤처진 한국 기업… 불황 탈출구 못 찾아
한국 기업들은 소극적 대응으로 실기(失機)하고 있다. 철강업계에선 2000년대부터 중국발 공급 과잉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나왔다. 기업 간 합병을 통해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국내 철강 산업은 지난해 포스코가 매출 1조원대 포스코특수강을 떼어내 세아특수강에 매각하고, 현대제철이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를 흡수한 것 외에는 대규모 재편이나 구조조정이 없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범용 철강 제품이 저가의 중국산에 밀리는 등 국내 철강 회사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고급 철강 제조·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만들어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한 인수합병에는 세제와 금융상의 혜택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같은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대기업 구조조정에는 한계가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샷법도 여야 합의 과정에서 대기업 혜택을 막는다는 이유로 각종 예외 조항이 만들어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지금으로선 산업 재편을 주도할 정치적 리더십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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