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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프랑스 좌파가 노동개혁에 나선 이유

바람아님 2016. 5. 20. 09:54

(출처-조선일보 2016.05.20 최유식 국제부장)

 

중국 정부가 최저임금을 2년 연속 20% 이상 올린 2011년, 중국의 한 지방도시 관리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는 지역 내 외국 기업들에 올라간 최저임금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들이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일자리가 그만큼 줄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그의 말대로 몇 년 뒤 중국엔 로봇 열풍이 불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앞다퉈 자동화 설비 도입에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300만달러를 들여 구입한 로봇 9대로 직원 140명을 대체한 중국 광둥성의 

한 주방용품 제조업체를 소개했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시장은 통제해야 하고, 또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막대한 세금과 복지 부담을 떠안기고, 노동 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을 만든다. 하지만 대가가 따른다. 

시장의 냉엄함을 잘 아는 기업들은 어떻게든 그 부담을 피할 수단을 강구하고, 

그 과정에서 고용 감소와 투자 부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새 정권이 출범하면 대기업들이 줄줄이 고용을 얼마씩 늘리겠다는 목표치를 발표한다. 

하지만 5년 뒤 셈을 해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고용 규모가 그대로이거나 줄어 있다. 

권력 눈치 때문에 보이는 데서만 '일자리 창출'을 외칠 뿐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최근 의회 표결이 필요 없는 긴급명령권을 동원해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주 35시간인 노동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했고, 

수주 실적이나 영업 이익이 줄면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해고 요건도 완화했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 이후 30년 이상 계속돼온 프랑스 좌파 노동정책의 대전환이다.


노조를 정치 기반으로 하는 좌파 정부가 스스로 노동개혁에 착수할 정도로 프랑스는 사정이 다급하다. 

실업률은 2012년 이후 5년째 10%를 웃돌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25% 전후에 달한다. 

낮은 성장률에다 과도한 노동 보호가 겹친 결과이다. 35시간 노동만 해도 그렇다. 

2000년 도입 당시엔 노동시간이 줄면 일자리가 늘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1인당 고용 비용이 증가하자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더 기피하게 된 것이다.


유럽 좌파는 1990년대 말 노동개혁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제3의 길'을 내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우파인 마거릿 대처의 노동개혁을 거의 그대로 계승했다. 

사회당 출신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2003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 노동시장을 수술했다. 

이런 변신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은 노동자가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다. 

고임금을 받는 블루칼라가 수두룩하고, IT 분야를 중심으로 근로 형태와 보상 체계가 전혀 다른 직종도 속출하고 있다. 

전통 제조업은 쇠퇴하는 반면,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 계층 내부가 복잡해졌고,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과도한 노동 보호는 결국 일부 귀족 노조에만 이익일 뿐이라는 게 유럽 좌파의 판단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결국 여소야대의 20대 국회로 넘어갔다. 

우리 처지가 프랑스와 똑 닮아 있다는 걸 모르는 의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개혁만 잘해도 20대 국회는 '일 좀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