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베에게 히로시마의 정신을 묻는다
(출처-조선일보 2016.05.30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
유럽 대륙이 히틀러의 군대에 유린당하고 있을 무렵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인슈타인 박사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나치가 전대미문의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으며, 반드시 히틀러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진주만이 공격당하고 동아시아가 일제(日帝)에 짓밟히는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원자폭탄
개발을 승인해 맨해튼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당시 어떤 비행기보다 빠르고 높은
고도로 비행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전략폭격기 개발을 명했다.
원자폭탄에는 20억달러, B29에는 30억달러, 총 50억달러가 들어간 국가의 명운을 건 일대 결단이었다.
지금 가치로 따지면 수천억달러의 투자였다.
1945년 8월 6일 아침, B29가 히로시마 9500m 상공에 나타났다. 인류 최초의 원폭은 일순 13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국 일본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무고한 희생이 많았다.
더욱이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온 한국인의 큰 희생은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다.
원폭 투하 결정과 관련해 역사가들 사이에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가장 타당한 이유는 원폭 투하가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냈으며 그 결과 수백만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이판, 유황도, 오키나와 등에서의 전투를 거치면서 수십만명의 미 병사가 희생됐고 일본 본토 공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병사가 희생될지도 가늠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미국은 일본 본토 공격에 앞서 제주도를 공략했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와 같이 옥쇄(玉碎)로 맞서는 일본군에 의해 제주도민 수만명이 집단 학살당했을 것이다.
또한 만주의 관동군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 내 기간시설과 군수공장에 대한 융단폭격을 단행해 한국인 수백만명이
희생됐을 것이다.
원폭 투하 71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미 국내는 물론 수많은 아시아인이 그의 방문을 우려했다.
가해자로서 군국 일본의 책임을 덮을 수 있다는 우려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모두(冒頭)에서 방문 목적이 '희생된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미군 전쟁포로들을 애도하기 위해'라는
점을 밝히고 인류 첫 피폭지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감성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여전히 아쉽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한국인 희생자들을 애도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희생당했다는 점을 세계가 알게 됐다.
그것은 일본이 피폭의 피해자이기 전에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의 책임에 대해 뼈있는 지적을 했다. 발전된 문명에도 불구하고 지배와 정복의 야욕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 점을 비난했다. 그는 또한 히로시마가 핵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도덕적 자각'의 시작으로 기억되기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도덕적 자각이 가장 필요한 측에서는 책임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인들에게서 마음으로부터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
왜 원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는지,
왜 아시아를 전쟁의 참화 속에 몰고 수천만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돼야 했는지,
아무런 참회의 목소리가 없었다.
과연 히로시마의 정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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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히로시마의 오바마
(출처-조선일보 2016.05.30 강인선 논설위원)
"빛이 번쩍하는 순간 옷과 피부가 너덜너덜한 채로 10m쯤 나가떨어졌다.
몸이 너무 뜨거워 강물로 뛰어들었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1992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한 달을 머물며 피폭자들을 만났다.
다리를 잃고 손이 굽은 채로 암과 피폭 후유증에 시달려 온 사람들이 울며 그날을 증언했다.
"일본이 신성한 전쟁을 하고 있고 반드시 승리할 줄 알았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때 머물던 숙소가 '원폭 돔'에서 가까웠다. 일본은 철골 앙상한 건물을 원폭 기념물로 삼았다.
하루에도 몇 명씩 피폭자 인터뷰를 하다 밤에 폭심(爆心) 근처에서 잠들면 악몽을 꿨다.
피폭자들은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이유를 물었더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한참 망설이다 누군가 "일본이 먼저 도발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인류가 다시 이런 일을 겪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주 히로시마 원폭 돔을 배경 삼아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 손을 잡았다.
미군 폭격기가 인류 최초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꽃을 바쳤다.
그는 "그날 숨진 십만 일본인, 수천 한국인, 십여명의 미군 전쟁 포로를 애도하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150m 떨어진 조선인 위령비는 찾지 않았다.
▶히로시마를 걷다 보면 '평화'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
'평화기념공원' '평화기념자료관' '평화 기념 우체통'….
히로시마는 국제 평화 도시로 거듭나겠다며 수많은 서구 지식인과 예술가, 언론인을 초청해 참상을 보여줬다.
그들이 다녀간 뒤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했다.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 캠페인'이다.
처참한 실상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본이 첫 원폭 피해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2차대전 가해국이라는 역사는 흐릿해진다.
▶미국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임 초 구상의 마무리라고 했다. 사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 방문은 일본이 피해자라는 인상만 부각시킬 뿐이다.
일본이 자기네가 저지른 전쟁에 대해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희석됐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사에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가 여전히 국제정치적 현실인 동북아에선 다른 문제다.
오바마의 구상과 아베의 계산이 맞닿은 부분에 그런 배려는 없다.
일본이 수십년 공들인 끝에 미국 대통령까지 히로시마에 오게 하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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