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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저성장 일본 반면교사 삼아라(4)] 투자·고용 악화되면 내수 더 위축.. 기업 경영에 부메랑될 것

바람아님 2016. 7. 11. 00:08
파이낸셜뉴스 : 2016.06.27 18:34

 

투자·고용이 기업 미래 결정엔고 반전에 긴장한 日.. 엔화약세 유도한 아베노믹스엔고에 다시 무용론 불거져.. 기업들 생산기지 속속 해외로과거와 같은 고성장 없다..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한계성장률보단 삶의 질 높여야.. 고용안정·윤리경영도 필수



지난 6일 방문한 일본 도쿄의 비즈니스 중심지 마루노우치에는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 빌딩이 새로 들어서고, 사무실 임대료도 오르고 있었다. 양적완화 등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부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취업률과 임금도 오르고, 2020년 도쿄올림픽 호재로 부동산 가격도 상승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엔저(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수출이 탄력을 받으면서 일부 기업들이 해외 생산물량을 국내 공장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장기침체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엔화의 강세(엔고) 반전 등으로 아직 회복이 덜 됐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이달 초 아베 총리가 당초 내년 4월로 예정한 소비세율 인상 시점을 오는 2019년 10월 이후로 연기한 게 일본 경제가 사실상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많다. 한국 경제도 최근 몇년간 저성장세를 이어와 비슷한 성장경로를 거친 일본의 경제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아베노믹스 흔들… 日 산업 엔고에 시름

일본 경제는 엔저가 이어지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먹히는 듯했다. 실업률은 지난 2012년 12월 4.0%에서 지난해 10월 3.1%로 개선된 데다 실질 임금(물가변동의 영향을 제외한 임금)도 지난해 7월 기준으로 27개월 만에 증가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들어 다시 강세로 돌아선 엔화로 인해 시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늘린다는 구상을 핵심으로 한 아베노믹스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일본 현지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해 "아예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와세다대 박상준 교수는 "지난 3년(2013~2015)간의 아베노믹스는 일본경제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엔저를 유도함으로써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며 "영업이익이 개선되자, 명목임금을 올리는 회사들이 늘어났고, 대부분 대기업의 경우 지난 3년 연속 임금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기업활력법' 등을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측면 지원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전희배 일본키스코 회장은 "정부에서 '인플레이션이 2%가 돼야 하기 때문에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요구에 실제로 대기업들은 호응했다"며 "사실상 움찔하는 효과는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소비세율 인상도 못할 정도라면 성공적으로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임시방편으로 진통제를 먹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이 저성장 늪에 빠진 것은 지난 1990년부터다. 1980년대 후반 형성된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기에 돌입했다.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81~1990년 연평균 6.2% 성장하기도 했으나 1991~2014년에는 연평균 0.4% 성장에 그쳤다. 같은 기간 실질 성장률도 4.6%에서 0.9%로 둔화됐다.

■일본 산업계, 장기침체에 빠진 이유는

버블 붕괴 이후 이처럼 저성장이 이어진 건 무엇보다 기업의 막대한 '부채' 때문이었다. 버블이 붕괴되고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부채는 기업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됐다. 이에 따라 기업의 최우선 과제가 부채의 상환이 됐고, 영업이익의 많은 부분이 투자보다는 부채의 상환에 쓰이게 됐다. 박 교수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정상화하는 데 힘을 쏟다보니, 신규투자 등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것이 기업의 활력을 잃게 했고, 전반적으로 투자가 부진하다보니 내수가 줄어 기업들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수는 줄어드는 반면, 수출은 줄지 않아 일본의 무역·경상 수지는 여전히 흑자였고, 따라서 1990년대 중반에 엔고가 심화됐다"며 "엔고와 내수의 축소는 기업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원인이 되었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일본에서 사라지는 이유가 됐다"고 부연했다.

특히 당시 기업들이 상황이 바뀐 것을 빠르게 인지하지 못하고, 구조조정 등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교수는 "장기불황 시기가 오기 직전인 고도성장 시기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본 국내 수요에만 의존해서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국내 시장도 어려워졌다"며 "그때 빠르게 의식을 전환해서 해외시장 개척이라든가 구조조정에 바로 돌입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소극적인 대처에는 고도성장기의 경험도 한몫했다. 실제로 일본경제 성장률이 지난 1992년 0%대로 떨어져도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이를 통상적인 경기순환으로 여겼다. 제조업에서의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등이 문제로 제기돼도 기업들은 원가절감, 경비 삭감 등 통상적인 불황 대책에 치중했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고도성장기에는 경기상황이 좋다보니 정보통신(IT) 업체가 TV도 만들고 반도체·액정도 만드는 등 무리한 다각화를 했다"며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과감하게 버려야 할 부분은 버리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소극적인 최고경영자들이 많아서 지연됐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리더십이 약해져 있어 국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 자체를 가지기 쉽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성장보다는 삶의 질 중요"

한편,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이제 요원하다는 의견도 있다. 호세이대학 김용도 교수는 "고성장은 경제의 덩치가 커지는 것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인데 어느 정도 지나면 한계가 오게 된다"며 "최근에는 저성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최악은 탈피해야겠지만 전처럼 성장률을 높이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며 "한국도 국민소득이 수십년 전에 비해 100배가 됐지만 그만큼 삶의 질도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한국 기업은 일본의 어떤 모습을 배워 저성장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와세다대 박 교수는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기업들은 부채를 계속 줄여나가고 전반적인 투자를 줄이면서도, R&D 투자에는 여전히 적극적이었다"며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안정도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일본에서도 과거에 비해 고용안정이 악화되면서 이것이 내수의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보고들이 있다"며 "한국도 지금보다 더 고용안정이 악화되면, 내수가 위축되고 결국 기업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나기마치 게이오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여건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도 과거 성장시절의 패턴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 기술 등을 창조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키스코 전희배 회장도 "일본이 아베노믹스 3년으로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니다"며 "꾸준한 기술투자로 저변에 깔려 있는 기술력이 높다. 연구활동에 대한 국민적 인식,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또 "윤리경영의식이 일반화돼 있어 '갑을관계'가 없고, 고용이 안정돼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nvces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