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성장 일본 반면교사 삼아라(3)]
日 일자리 구조개혁 실패
아베노믹스로 기업경기 호전.. 신규채용 크게 늘어났지만..
부모세대의 버블붕괴 지켜본 청년들 "적게 벌고 적게 쓰자"
직업 없이 알바로 생계 유지.. 미국 유학도 눈에 띄게 줄어
일본기업들 해외 채용에 눈길.. 한국 청년들에겐 새로운 기회
일본 도쿄의 니혼대 4학년에 재학 중인 24세 하시모토씨(가명)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취직에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6월부터 일본의 본격적인 기업 채용시즌이 열리면서 주위 친구들이 평균 3~4개의 기업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고 있지만 하시모토씨는 졸업 후 기업에 입사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하며 자유롭게 살기로 결심했다. '프리터족(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선택한 것이다. 하시모토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아 기쓰고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생계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한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면 내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등 훨씬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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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업시장은 최근 경기호전으로 일자리가 늘고,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노동 가능한 청년의 수가 감소하면서 호전되고 있다. 수저계급론과 열정페이로 대변되는 한국의 팍팍한 상황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일부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는 하시모토씨와 같이 자발적으로 취업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퍼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로 노동의 질이 악화되면서 등장한 프리터족이 고착화돼 실업률이 개선된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년인구 감소로 취업여건 호전
버블 붕괴 이후 빠르게 증가하던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2003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2010년에 다시 상승했지만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다.
22일 일본 최대 채용 전문기업인 리크루트사에 따르면 일본의 1인당 일자리 수는 1991년 버블붕괴로 2000년 0.99개까지 급감한 후 꾸준히 상승했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2014년 1.28개, 2015년 1.61개 등 채용시장이 개선되기 시작해 올해 1.73개, 내년 1.74개까지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카자키 히토미 일본 리크루트사 취직미래연구소장은 "2014년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취업시장이 호전되고 있다"면서 "아베 정권에서 공공사업을 늘리고, 동일본대지진의 여파와 2020년 도쿄올림픽 준비 등으로 건설시장의 인력수요가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카자키 소장은 이어 "중산층 소득 증가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수시장이 살아나면서 유통업의 인재채용도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버블붕괴에 지친 청년, 취업포기 고착화
반면 경기개선만으로는 일자리 증가의 원인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실업률 개선의 가장 큰 요인으로 청년인구 감소를 지목하고 있다. 청년층 인구의 감소가 청년고용시장의 노동공급을 줄여 상대적인 청년실업률 지표 개선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 따르면 주요 노동공급층인 20~24세 청년인구는 1994년부터 감소해 2000년대 연평균 2.8% 속도로 빠르게 감소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노동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앞서 소개한 하시모토씨의 사례와 같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간 프리터족과 니트족(일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청년세대) 등의 취업포기 청년들이 노동력 부족 사태를 부추겼다.
2000년대 일본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프리터족.니트족 등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청년세대는 1990년대 버블붕괴에서부터 비롯됐다. △장기 실업자 확대 △단시간.아르바이트 노동자 비율 확대 △청년층 교육부담 증가 등이 주요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가 파악한 비경제활동인구는 1990년대 중반 40만명에서 2000년대 초 60만명까지 늘어났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취업지표가 개선됐지만 취업을 단념한 청년들이 여전히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과 달리 일본 유학생은 1990년대 이후 급감하고 있다. 양국의 유학생 수는 2007년 역전돼 2012년 한국이 4만여명을 기록한 반면 일본 유학생은 1만여명에 그쳤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경제전문가는 "유학생 수가 줄었다는 것은 진취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청년이 감소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일본에서 말하기 꺼리지만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는 1990년대 버블 붕괴로 부모세대의 성과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경제활동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동일본대지진 이후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가 퍼진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 류상윤 책임연구원 역시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니트, 프리터 대책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뚜렷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는 뒤늦은 대응으로 문제해결이 어려웠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채용 수요 늘어나
일본 기업들은 자국 내 인력수급이 어려워지자 해외 채용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외국어 실력이 우수하고, 국내에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3월에도 KOTRA가 오사카에서 개최한 일본 기업 취업박람회에는 현지 취업을 희망하는 한국 유학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 박람회에는 교세라(전자부품), 히타치조선(기계, 플랜트) 등 제조기업 6개사, 돈키호테(유통), 스위스포트재팬(공항서비스), 한난(상사) 등 유통.서비스 기업 12개사 등 유망 일본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KOTRA는 이달 말에도 대규모 취업박람회를 개최해 우리 청년들의 취업난에 숨통을 틔운다는 계획이다.
특히 글로벌 사업 부문이 큰 일본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활동가능한 인재 구하기가 시급한 실정이다. 해외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근로자의 출신국으로 사업진출에 유리하다는 전략도 내포돼 있다.
일본 리크루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이 채용한 해외 유학생 출신 직원의 국가별 분포는 중국이 64.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한국이 9.5%로 뒤를 따랐다.
일본 리크루트사의 사쿠라이 다카후키 해외채용담당 매니저는 "일본 기업은 학벌과 스펙 대신 전공분야와 가능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면서 "금융과 정보기술(IT) 등 국제적인 기준이 필요한 사업분야의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쿠라이 매니저는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어가 능숙한 인재가 좋지만, 언어 교육을 무상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본 기업은 인재육성을 중요시한다"고 강조했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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