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어느 날. 중국 저장(浙江) 성 원저우(温州) 시 원청(文成) 현의 한 고아원.
태어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기가 고아원 문 앞에서 발견됐다. 아기를 버린 이를 알 단서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 후, 입양돼 레이 시우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기는 양부모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레이가 아홉 살 때, 양부모는 그의 입양사실을 공개했는데 뻔히 밝혀질 일을 숨겨 아이에게 충격을 주느니 최대한 ‘입양’이 무엇인지 알게 될 무렵 사실을 알리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레이가 열한 살 때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양아버지가 홀로 가족을 책임지게 되면서 레이는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동안에도 레이는 친부모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왜 버렸냐고 물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자신을 세상에 낳아준 사람이 누군지 보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 레이의 친부모도 뒤늦게 딸 찾기에 나섰다.
이들은 레이를 낳기 전, 딸 4명을 두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들을 원한 부부는 막내를 낳았으나, 또 딸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미 가계가 기울어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었던 부부는 결코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중국 인민망에 따르면 레이가 친엄마를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신문 광고였다. 가족 찾는다는 글을 레이가 신문에 게재했는데, 이를 본 누군가 시우핑의 가족들에게 알림으로써 만남이 성사됐다. 시우핑은 레이의 친언니다.
39년 만에 엄마를 만난 레이 시우롱(가운데). 왼쪽은 친엄마, 오른쪽은 친언니. / 사진=인민망 캡처 |
신문사를 통해 레이를 만난 시우핑은 그가 친동생이라고 믿었다. 다만, DNA 검사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 24일, 두 사람은 DNA 검사를 받았다.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낸 레이와 시우핑은 이달 8일 ‘유전자 100% 일치’라는 결과서를 받고 나서야 수십년 만의 재회 기쁨을 누렸다.
레이의 엄마 첸(70)씨는 39년 만에 딸을 만난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레이도 엄마를 안고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이들을 지켜본 시우핑도 울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이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버린 친부모가 밉다고도 하지 않았다. 양부모가 단 한 번도 때린 적 없었다며 자기를 키워준 이들에게 고마워한 레이는 앞으로 양가 가족들을 잘 모시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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