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정치'만 원하는 개헌, 왜일까?

바람아님 2016. 7. 17. 00:09
세계일보 2016.07.16. 10:21

68번째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한국 정치권은 온통 ‘개헌’으로 넘쳐난다. 여야의 유력정치인들 모두 1987년 개정된 제9차 헌법이 시대변화에 맞지 않아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치권의 개헌주장은 대체적으로 권력체계의 개편을 상정하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한국에서만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도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헌법 9조의 ‘군대 보유 금지’ 조항의 개정을 요구한다.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나라의 정치인들이 속은 다르지만 모두 개헌을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작, 한·일 양국의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개헌 요구에 뜨듯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한 국가의 구성 원리와 이념, 기본 정신,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국가의 기본’을 바꾸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는 넘쳐나는데 정작 ‘주권’을 가지는 국민들 내부에서는 개헌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겨났을까. 



◆ 한국에선 ‘권력구도 개편’, 일본에선 ‘전쟁 포기’가 개헌 논의 핵심

한국 내 유력 정치인들 중에서 개헌 논의를 언급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고 할 정도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정치인이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도다.


그 중에서도 ‘권력체제 개편’이 한국 내 개헌 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현행 5년 단임제가 가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권 및, 임기 후반부의 레임덕 발생등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제안도 쏟아져있다.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14일 자신의 지지자들과 가진 대규모 행사에서 “한 사람의 인치로는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없다. 권력을 나누고 혁신해야 한다. 여야 간 연정을 할 수 있는 권력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에는 여야 의원들이 모여 개헌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일본 정치에서 ‘개헌논의’는 이미 상수로 접어들었다. 집권당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을 비롯해 개헌에 찬성하는 ‘개헌 세력’들은 7월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를 통해 개헌안 발의 요건이 가능한 수준(참의원 2/3)을 넘어섰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개헌파’들은 전쟁 포기를 규정한 일본국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 조항)을 개정하고 싶어한다. 일본 헌법의 1조부터 8조까지는 일왕(덴노)의 지위를 규정한 조항이다. 일왕의 지위를 규정하고 난 뒤 첫 조항이 바로 ‘전쟁 금지’ 조항이다. 최근 들어 있었던 아키히토 일왕의 양위 표명 논란이 아베 총리의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일왕의 반격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 한국도 일본도 국민은 관심 無…“내 삶에 개헌이 무슨 영향을 끼치나”

한·일 양국 정치권 모두에서 개헌은 ‘뜨거운 감자’지만 양국의 국민들 모두 개헌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베 총리에게 참의원 승리를 안겨준 일본 국민들은 정작 그 직전인 6월말에 실시된 아사히 신문 여론조사에서 단 31%만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48%에 달했다. 아베 총리가 9조 개정을 한다고 나서더라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관심있다는 응답과 관심없다는 응답은 엇비슷했다. ‘정치’만 개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기본이나 마찬가지인 헌법의 개정에 왜 국민은 미지근할까. 무엇보다 헌법 개정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인식이 크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16일 통화에서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개헌을 해도 바뀌는 것이 있냐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 정치인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가 ‘권력체제 개편’이나 ‘전쟁 포기’와 같은 쉽게 와닿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점도 국민들로 하여금 개헌 논의에 큰 관심을 없게 만들게 한다. 최 교수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개헌 에너지 소중하게 써야…신중한 접근 필요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개헌과 같은 큰 주제에 쉽사리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한 강연에서 “많은 사람이 20대 국회의 에너지를 개헌이라는 시시한 이슈에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고, (개헌이라는) 시시한 문제가 마치 천하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양 전력투구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코미디”라고 혹평했다. “그런 에너지가 있으면 차라리 다른 문제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 전 장관은 비례대표제 확대와 같은 미시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뭔가 변해야 한다’는 인식을 양국 정치인들이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은, 양국 내부에 그런 기류가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헌을 이용하지 말고,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내 삶이 바뀐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내 권력체제 개편과 같은 거시적 이슈가 아닌 행복추구권, 국민의 기본권 향상등 미시적 이슈를 들어 설득하는 방식도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가의 기본을 바꾼다는 점에서 개헌은 국민 절대 다수의 동의 없이는 절대 이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