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0] 그날 그녀는 알았다, 죽음과 입맞추리라는 걸

바람아님 2013. 7. 14. 08:32

(출처-조선일보 2012.05.13  손철주 미술평론가)



	'계월향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05×70㎝, 1815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계월향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05×70㎝, 1815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임진왜란 때 진주의 논개(論介)는 왜장(倭將)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평양에도 왜군의 간담을 얼어붙게 만든 여성이 있었다. 의기(義妓)로 추앙받는 계월향(桂月香·?~1592)이다. 임진년 그해 평양성이 함락되자 계월향은 정인(情人)이던 김경서(金景瑞) 장군을 성안으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치밀하게 짜고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副將) 고니시 히(小西飛)의 목을 베었다. 왜군의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 계월향은 그날 죽었다. 평양성을 되찾는 데는 그녀의 숨은 공이 있었다.

이 초상화는 계월향 사후 200년이 넘은 1815년에 그려졌다. 그녀를 기리는 평양의 사당에 걸려있던 작품이다. 물론 생전 모습은 아닐 테다. 형식은 미인도를 닮았다. 세운 무릎에 팔꿈치를 괸 자태가 성숙한데 조붓한 얼굴선에서 애티가 난다. 부드럽게 내려오다 인중을 만난 콧날은 시원스럽고, 애써 오므린 입술은 다소곳한 기색을 더한다. 머리 꾸미개는 올올이 묘사하는 대신 덩이지게 그려놓았다. 쪽 찐 머리가 아닌데 비녀를 꽂은 게 낯설다. 초록빛 선명한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는 어깨와 팔에 꼭 끼어 터질 듯하다.

뒷날 계월향은 온갖 팩션(faction)의 주인공이 됐다. 이 초상에도 그녀가 죽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기술돼 있다. '김경서가 왜장의 머리를 들고 문을 나오니 계월향이 옷을 잡고 따랐다. 둘 다 빠져나오기는 어렵게 되자 김경서는 칼을 들어 그녀를 쳤다'. 계월향은 왼손에 수건을 부여잡고 있다. 저 손으로 김경서의 옷자락을 잡았을 것이다. 눈썹 위에 눈썹 하나씩을 더 그렸다. 그렇게 한 화가의 속내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가슴에 매단 노리개에 '재계(齋戒)' 두 글자가 또렷하다.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재계다. 그날 계월향은 죽을 줄 알았다. 


(참고 이미지 : 계월향 초상화 부분확대 - 눈썹, 노리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