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1] 우리가 형제라는 걸 알아들 보시겠소?

바람아님 2013. 7. 15. 07:22

(출처-조선일보 2012.05.20  손철주 미술평론가)


세 사람 중 가운데 있는 인물은 옷에 두른 띠가 다르다. 황금색 테두리 안에 붉은 장식이 든 학정금대(鶴頂金帶)다. 그는 수사(水使)를 거쳐 통제사를 지낸 조계(趙啓·1740~1813)다. 그 양 옆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같은 모양의 띠를 찼다. 왼쪽이 조두(趙蚪 1753~1810), 오른쪽이 조강(趙岡·1755~1811)이다. 둘 다 부사(府使) 벼슬을 했고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외자 돌림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형제다. 삼형제가 한 화면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초상화는 이 작품뿐이다. 이들을 한데 모은 사정이 있었을까.

가문의 살붙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벼슬길로 나아간다. 그것도 모조리 삼품(三品) 이상 고위직에 오른다. 참 가슴 벅찬 출세다. 바로 조씨 형제들이 그랬다. 과거 급제자를 알려주는 방(榜)꾼이 동네방네 큰소리로 형제의 이름을 외쳐대는 순간 집안의 살림이 피기 시작하고, 이를 지켜보는 윗대와 아랫대는 더불어 어깨춤이 났을 테다. 당연히 누대에 두고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거리가 필요했다. 이게 이 초상화가 그려진 이유다. 개인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을 내세우는 '인증샷'으로 초상화만 한 것이 있을까.

'조씨 삼형제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42.0×66.5㎝, 18세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뻣뻣한 자세가 좀 멋쩍긴 해도 오사모와 담홍색 단령 차림에 자존(自尊)이 넘친다. 자주꽃 핀 감자는 캐보나 마나 자주감자다. 내림이 어디 가랴 싶게 형제들의 눈매와 골상(骨相)이 빼닮았다. 모두 광대뼈가 불거지고 하관이 빨았다. 눈꼬리가 위로 들렸는데, 막내가 가장 매섭다. 수염은 제가끔이고 아우들에 비해 형의 숱이 성글다. 그 형의 얼굴에 어느덧 검버섯이 피었다. 연암 박지원이 읊었다. '선친이 그리울 때 형의 얼굴을 보고, 형이 그리울 때 제 얼굴을 냇가에 비쳐 본다'고. 형제는 그런 사이다. 초상화의 시선이 어디로 향했는가. 형제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