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3] 요절한 아저씨, 기억으로 되살려… 유족 울음바다

바람아님 2013. 7. 17. 07:15

(출처-조선일보 2012.06.03  손철주 미술평론가)


소동파가 쓰던 두건을 머리에 얹고 주름이 드러난 도포 속에서 두 손을 맞잡은 이 사내는 조선 후기의 유생(儒生) 심득경(沈得經·1673~1710)이다. 이름이 좀 낯설다. 대신 그 집안을 들먹이면 알 만하다. 심득경의 어머니가 유명한 시조 시인 고산 윤선도의 딸이다. 윤선도는 또 조선 초상화의 백미이자 국보인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의 증조부다. 심득경은 나이가 다섯 살 많은 윤두서(1668~1715)의 아저씨뻘이었다. 두 사람은 진사시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살지 않았다. 함께 시문(詩文)을 읊조리며 초야의 다정한 짝으로 지냈다. 따라서 이 초상은 당연히 윤두서가 그렸다.

그림의 위아래에 글이 많다. 그중 심득경의 벗이던 서예가 이서(李敍·1662 ~?)가 지은 글이 눈에 든다. 읽어보면 심득경의 생김새와 됨됨이가 떠오른다. '눈이 맑고 귀가 단정하며 입술이 붉고 이빨이 촘촘하다'. 그 모습이 초상화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품성은 어떤가. '물에 비친 달은 그의 마음이요, 얼음 같은 옥(玉)은 그의 덕이다'. 입에 발린 칭찬으로 듣기에는 이어지는 글이 단호하다. '잘 묻고 힘껏 실천했으며 깨달은 것은 확고했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딱 맞는 인물이란 얘기다.


그림을 그린 윤두서의 소회는 맨 아래에 적혀 있다. '숙종 36년(1710) 11월에 그렸다. 이때가 공(公)이 돌아가신 지 넉 달째다. 해남(海南) 윤두서는 삼가 가다듬고 마음으로 그린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그렸다는 토로다. 심득경은 마흔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떴다. 애통하기 그지없던 윤두서는 4개월 뒤 정신을 수습하고 붓을 들었다. 피붙이와 다름없던 심득경의 이목구비야 눈에 선했을 테다. 초상화를 받은 심득경의 유족은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본 듯이 통곡했다. 저 붉게 타오르는 입술! 윤두서는 식은 입술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심득경 초상' - 윤두서 그림, 비단에 채색, 

160.3×87.7㎝, 171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