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6.10 손철주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최순우는 이 초상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고 했다. '양심과 용기의 아름다움'이 보여서 그렇단다. 고려에 대한 포은의 충성을 은근히 염두에 둔 평가다. 이 작품 어디에 포은의 단심(丹心)이 있을까. 이한철은 그림 윗부분을 시원히 비운 채 아래에 반신(半身)을 앉혔다. 구도에서 19세기 화가답게 세련된 감각을 살렸다. 차림새는 모본(母本)에서 고스란히 따왔다. 사모(紗帽)에서 낮은 턱과 아래로 처진 뿔, 그리고 단령(團領)에서 밭게 재단된 목선 등이 여말(麗末)의 의관 그대로다. 허리의 꽃무늬 금대(金帶)는 포은의 높은 지위를 알려준다.
그림 솜씨 좋은 이한철은 초상을 모사하면서도 버리고 취할 줄 알았다. 무엇을 살렸는가. 얼굴 주름을 엄청 강조했다. 이마에 고랑이 파이고, 눈두덩은 자글자글하고, 볼살은 처지고, 턱은 겹겹이다. 공들여 그린 주름살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이웃 영감처럼 낯익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턱수염 위를 눈여겨보자. 깨알만 한 점 하나, 바로 사마귀다. 14세기의 충신은 아득해도 사마귀가 있는 노인은 확 다가온다. 포은의 체취가 정겹다. 이것이 초상의 오래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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