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5] 꿈틀대는 용 무늬에 '大權의 기상'이

바람아님 2013. 7. 19. 08:56

(출처-조선일보 2012.06.17 손철주 미술평론가)


조선 왕조에서 얼굴이 알려진 임금이 몇 명이나 될까. 남아있는 초상화와 사진 다 동원해도 열 명이 안 된다. 그 숱한 왕의 초상이 전란을 겪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렸다. 조선은 '초상화의 천국'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닌 것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는 한 시절 초상화가 26점이나 됐다. 곤룡포 차림은 물론이요,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도 있었다. 또 말을 탄 장면까지 그려졌다고 하니 임금의 초상, 곧 어진(御眞)의 흥미로운 형식이 짐작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조의 초상은 이 한 점만 남았다.

이 어진은 1872년 다시 그린 이모본(移模本)이다. 전주 경기전에 있던 모본을 보고 베꼈지만, 쏟은 공은 대단했다. 모본은 이모본을 만든 뒤 불태웠다. 이모본에는 화가가 무려 8명 참여했다. 조중묵, 백은배, 박기준, 유숙 등 그림 실력으로 따져 당대에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숙수(熟手)들이 한 달이나 매달렸다. 다시 태어난 개국의 시조는 어떤 모습인가. 위로 뿔이 달린 익선관에 짙푸른 곤룡포, 정면을 응시하며 버티고 앉은 틀거지가 혁명의 군주에 손색없다. 당대나 후대나 태조의 기골에 대한 기록은 비슷하다. 헌칠한 몸에 귀가 크고 콧날이 우뚝해 풍채가 호걸다웠다는 것이다.


이 초상은 좌우가 대칭에 가깝다. 잘 다듬은 수염과 구레나룻에다 이목구비가 그렇고, 주변을 둘러싼 장식도 사방연속무늬다. 짝이 착착 맞아 돌아가는 통합의 이미지가 보인다. 또 하나 화면을 채운 형상은 용(龍)이다. 곤룡포의 앞과 뒤, 어깨에 새겨진 금색의 용은 발톱이 다섯 개로 지존의 권위를 자랑한다. 용상에 일일이 새긴 용들은 용틀임한다. 채색 깔개의 연속무늬도 용을 단순화한 도안인데, 그 속뜻은 염원의 지속이다.

국초(國初)를 연 태조의 용심(龍心)이 드러나는 어진이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요즘 잠룡(潛龍)들의 디자인이 덩달아 궁금해진다. 








'태조 어진' - 조중묵·백은배 등 합작, 

   비단에 채색, 218×156㎝, 1872년, 어진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