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신수진의 사진 읽기] [1] 69층 현장의 고달픔도 잊은 평화로운 휴식

바람아님 2013. 7. 16. 07:49

(출처-조선일보 2013.05.02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미국 뉴욕의 록펠러 센터 건설 현장을 찍은 이 사진은 무려 80년 전 근로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공황 시기에 미국 내에서

실행된 유일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였던 이곳에서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얻었다. 놀라운 것은 69층 높이 공사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그들의 모습이 기이하리만치 자연스럽고 여유롭다는 점이다. 아찔한 마천루는 그들 삶의 터전이 되었다. 땅을 일구는

농부나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처럼 그들은 하늘을 올랐을 것이다. 사진에 담긴 그곳에서의 점심 식사는 일상적이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러한 휴식은 잠시일 뿐이다. 이와 같은 현장에서 현기증 나는 공포나 목숨을 건 치열함을 피해갈 순 없었을 테니 말이다.

사진 속 근로자들의 모습에서 읽히는 평화는 삶을 지탱하기 위한 악전고투의 다른 얼굴인 것이다.


하늘 위 식당 - 루이스 하인,‘ 록펠러 센터 건설 중 GE빌딩 69층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근로자들’, 뉴욕, 1932.

사진은 시간을 담는다. 찰나의 순간이 고정되면서 사진은 시대의 목격자가 되기도 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다시 경험할 순 있다.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나의 현실을
반추하는 거울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루이스 하인(Lewis Hine·1874~1940)도 사진 속 근로자들처럼 직업인으로서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람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면서 거의 10년 동안 대학 진학을 미루고 온갖 잡역을
전전해야 했다. 이후 교육학과 사회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3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했지만, 이 사진을 찍기 전까지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그에게 고단한 짐이었다. 결국 환갑을 앞두고 찍은 '일하는 사람들' 연작을 통해 그는 사회적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불멸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고 지치지 않는 열정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시간은 고귀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가치를
공감할 수 있다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을 다시 보며,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고귀함과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