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6.07.27. 13:25
모르는 사람이 내게 주었다는 돈을 이웃사람이 대신 전해주고 갔다. 이웃사람은 동네언니 뻘 되는 분인데, 얼마 전 만났을 때는 날마다 지나다니는 서울성곽에서 아픈 고양이를 발견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근처 동물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줬고, 고양이는 완치되었다. 그 고양이가 이제는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와 앉아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데, 지나가다 그것을 인상 깊게 보고 그간의 사연을 들은 스님이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내게 보내준 것. 돈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나는 오며 가며 그것을 보며 이 세상으로부터 뭔가를 늘 ‘더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거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억울할 때가 많았고, 늘 이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만을 응시하곤 했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도가 약해졌음을 느낀다. 이런 증상 혹은 현상이 노화와 관계된 것은 아닐까 두려운 한편, 불만에 가득 찬 채 구겨진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돈은 아무런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가볍다. 그가 비구인지 비구니인지, 젊었는지 늙었는지 알 필요도 없다. 지금처럼 한 인간이 풍기는 너그러움만을 기억하면 된다. 정신과 물질은 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흘러야 큰 효과를 내는 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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