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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 생태 엇박자

바람아님 2013. 7. 19. 08:49

(출처-조선일보 2009.04.14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 몇 년간 우리 집 마당의 목련은 동네 다른 집 목련들보다 줄잡아 며칠씩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내와 나는 우리 집이 동네에서 가장 양지바른 터를 가졌다고 으스대고 산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우리 목련은 지난주 초에 이미 꽃잎들을 죄다 떨구고 말았다.

최근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봄꽃인 개나리·진달래·벚꽃의 개화일(開花日)이 6~8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식물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생장이 촉진되는 현상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싶다.

농작물의 생장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수확량도 늘 것이니 말이다. 남한의 경우 벼를 이모작할 수 있는 논의 면적이 벌써 90만㏊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개화 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온갖 불길한 변화들을 예고하는 조종(弔鐘)이다. 네덜란드 생태학자들은 2006년 5월 4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네덜란드의 알락솔딱새가 지난 20년간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 90%가량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식물의 잎은 점점 더 일찍 돋아나고 그를 갉아먹으려는 곤충의 애벌레들도 예전보다 일찍 등장하는데 강남 갔던 알락솔딱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날 돌아온단다. 그러니 아무리 서둘러 짝짓기를 해도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올 즈음이면 벌써 상당수의 애벌레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 엇박자(ecological mismatch)'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덴마크 제비들의 경우에는 지난 33년간 수컷들은 점점 더 일찍 돌아오는데 암컷들은 여전히 느긋하단다. 독수공방에 정든 임 기다리는 수컷들이 안쓰럽다. 기후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데 생물들은 아직 그 리듬에 맞는 춤을 추지 못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개나 되던 미국의 벌통이 2005년에는 240만개로 감소했다. 세계 식량의 3분의 1이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생산되며 그 임무의 80%를 꿀벌이 담당한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언젠가 꽃들은 모두 나와 헤벌쭉 웃고 있는데 벌들은 전혀 잉잉거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지도 모른다. 갑자기 일찍 피고 져버린 우리 집 목련이 야속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