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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시베리아의 저 푸른 초원 위에서

바람아님 2016. 8. 24. 18:28

(출처-조선일보 2016.08.24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힘들고 배고팠던 시베리아 답사
청동기시대 무덤서 발견한 손잡고 누운 母子의 유해가
4000년 세월 뛰어넘어 고독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가슴 먹먹해지는 사랑 전해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20년 전 시베리아로 유학 가서 떠난 첫 번째 발굴장은 서부 시베리아의 '바라바'였다. 
바라바는 거대한 평원지대로 5월이 되면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길은 진창이 되고 천지 사방은 
모기로 들끓는다.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건만 군데군데 솟아 있는 언덕에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던 유적이 많았다. 
우리 발굴단은 6월부터 서리가 내리는 9월 말까지 군용 텐트를 치고 삽 몇 자루로 무덤을 발굴했다. 
발굴도 힘들었지만 자작나무 장작을 직접 패어서 식사 당번을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힘들게 공부해서 유학 간다더니 고작 시베리아 벌목공처럼 살았느냐"고 농담하는 친구도 많지만, 
내게는 평생을 두고 간직하는 소중한 기억이다.

우리가 발굴한 유적 중에는 약 4000년 전 만들어진 청동기시대 마을의 공동묘지도 있었다. 
2년 전 이 유적에선 마주 보며 손을 부여잡은 채 누운 모자(母子)의 무덤도 발굴됐다. 
가족으로 생각되는 어른의 무릎 위에 아이를 올려놓은 무덤도 같은 시기에 나왔다. 
수십 개의 인골을 발굴하고 수백 개의 인골을 본 나도 서로 부둥켜안은 자세로 묻혀 있는 어머니와 아들 앞에서 먹먹해졌다. 
저세상까지도 자식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와 그 품의 자식, 그리고 그들의 손을 꼭 쥐게 해서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졌기 때문이다.

삶이 각박한 초원에서 무덤은 살아 있는 가족의 정을 다지는 곳이기도 했다. 
초원의 유목민은 집 없이 1년 내내 사방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다 같이 모이는 고향이란 게 없다. 
넓은 초원에 흩어져 살다 보니 제대로 얼굴 보기도 어려운 유목민들은 겨울 목초지에서 여름 목초지로 이동할 때 
조상의 무덤이나 암각화 앞에 모여 새로운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정을 나눴다. 
그렇게 모였을 때 아이들은 주변 바위 위에서 뛰어놀았고 할아버지들은 조상의 무용담을 전해주었다. 
몽골과 시베리아 초원 어디를 가도 돌로 만든 무덤이며 암각화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시황의 무덤처럼 권력을 동원해서 거대한 고분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무덤은 먼저 떠나간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무덤 속 보물도 사실은 먼저 떠난 사람이 저승에서도 편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은 사람들이 넣어준 선물이었다.

[ESSAY] 시베리아의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이철원 기자
내가 유학을 했던 1990년대 중반 러시아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무법천지였고 모든 생필품이 궁했다. 
바라바를 발굴할 때는 우리도 러시아과학원의 재정난 때문에 해를 넘긴 감자와 메밀을 먹어가며 거의 맨손으로 고분을 
발굴해야 했다. 쉬는 날이면 교수님은 너구리나 오리 사냥으로 단백질을 보충했고, 우리는 주변 농가에서 감자를 캐주고 
대신 달걀이나 보드카를 얻어먹곤 했다. 보드카도 구하기 어려워 97도짜리 알코올 주정을 사 와서 물에 희석해 
수제(手製) 보드카를 먹는 팀원도 있었다. 심지어 현장 안전을 감독하러 온 마을 경찰도 우리 발굴단의 딱한 사정을 보곤 
가끔 들러서 통조림이며 맥주를 놓고 갔다. 그래도 발굴단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도우며 지냈기에 내게 시베리아 
발굴의 시간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추억이다.

맨주먹 칭기즈칸이 한 줌도 안 되는 몽골 병사를 이끌고 단기간에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한 배경에 대해 
흔히 발달한 무기와 기마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칭기즈칸의 리더십과 몽골 군대 조직이었다. 
몽골 군대의 강력함은 다친 병사를 보호하고 새로운 병사를 빠르게 조직의 일원으로 만드는 유목민의 생존 방식에서 나온 전통이다. 가수 남진이 부른 노래 가사 '저 푸른 초원 위에'와 달리 초원은 척박한 곳이다. 
초원의 아름다움은 짧은 여름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기 힘든 자연 속에서 서로 도우며 삶을 영위한 유목민들의 문화가 살아 숨 쉬기에 더욱 아름답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거나 몽골 초원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손님 접대에 정성을 다하는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특별히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가를 바라서도 아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도시락이 급증하며 '고독'이란 말이 보편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사회의 고독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베리아 발굴장의 푸른 초원이 더욱더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