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23 길해연 배우)
한 손에 안경을 들고 안경닦이를 찾는다.
일곱 개의 안경집을 탈탈 털어 보고 서랍 속을 다 쑤석거려 봤는데… 없다.
비좁은 방 안을 이 잡듯 뒤져본다. 찾았다.
책갈피 속에 곱게 접혀 있는 안경닦이를 꺼내 들고 보니 이번엔 안경이 사라졌다.
"분명 내가 손에 이렇게 꼭 쥐고 있었는데…." 비좁은 방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이건 분명 셋방살이 요정들 소행이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요정을 부른다.
"나 지금 급하거든. 얼른 돌려줘."
나처럼 인생 대부분을 뭔가를 찾다가 끝낼 것 같은 공포를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비밀 하나 알려드려야겠다.
나처럼 인생 대부분을 뭔가를 찾다가 끝낼 것 같은 공포를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비밀 하나 알려드려야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는 셋방살이 요정이 살고 있다.
그들은 월세를 낼 수가 없어서 우리네 눈에 안 띄게 숨어 산다.
워낙에 작아서 우리도 그들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간혹 밤에 아무도 없는데 사사삭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면 바퀴벌레가 아니라 셋방살이 요정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요정들이 우리네 물건을 빌려다 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요정들이 우리네 물건을 빌려다 쓴다는 것이다.
그들은 빌려 쓴 물건을 주인에게 반드시 돌려준다.
간혹 원래 두었던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애타게 찾던 물건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을 것이다.
셋방살이 요정들의 실수다. 요즘 우리 집에선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물건이 안 보인다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요정들이 겁에 질려 그 물건을 돌려주러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너무 자책을 해서도 안 된다.
워낙 소심한 요정들이라 미안한 나머지 물건과 함께 영영 숨어버릴 수도 있으니….
잠시 감았던 눈을 뜨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면 그렇지. 문지방에 안경이 두 다리를 벌린 채 널브러져 있다.
오래전 동화책 속에서 만난 셋방살이 요정들과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우주의 비밀이라도 깨닫게 된 듯 기뻐했었다.
나처럼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어디에다 뒀는지 찾아 헤매기 일쑤인 분들께 권하고 싶다.
물건을 찾다 화가 났을 때 셋방살이 요정을 떠올려 보라.
당신은 화를 내는 대신 히죽 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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