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싸락눈 내리던 날 출가를 한다. 1956년 3월 성직에게 또 편지를 썼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 버렸다.” 집에 남은 할머니를 걱정한 젊은 스님. 눈물로 산사 생활을 시작한 걸까.
스님은 많은 공부를 했다. 세수 78세, 법랍 54세로 입적하기까지 매일 공부하고 글을 썼다. 법문을 하기 전에는 밤새 준비를 했다. ‘일기일회’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오두막 편지’…. 법문집과 수필집만 마흔 권이 넘는다. 글을 고치고 또 고친 법정 스님. 마지막 순간 그 많은 글을 “말빚”이라고 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 스님은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 때문일까, 고승의 말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스님이 입적한 2010년 서점마다 스님의 책은 동이 났다.
책에 남은 말을 옮겨 본다. 2007년 4월15일 법문, “우리는 이 풍진세상을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내며 산다. 노후를 걱정하고, 온갖 근심걱정을 미리 가불해 쓰느라 밤잠을 못 이룬다.” ‘버리고 떠나기’에 남긴 글,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2008년 10월19일 법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 고통스런 일이 해결될 수 있을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이런 말을 모두 빚으로 여긴 모양이다.
법정 스님이 30대 때 쓴 원고 14편을 발굴했다고 한다. 불교신문에 1965년 기고한 시 3편, 칼럼 4편, 불교설화 7편. 발굴인가. 재생산되는 말빚. 스님의 바람과는 달리 말빚은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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