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産業·生産·資原

[만물상] '신뢰'의 값

바람아님 2016. 9. 5. 09:54

(출처-조선일보 2016.09.05 선우정 논설위원)

6년 전 도요타 홍보실 직원에게 전화를 받은 건 오후 5시쯤이다. 일본 도쿄였다. 
미국에서 일어난 도요타자동차 전복 사고로 세계가 시끌시끌했다. 
"밤 8시경 경영진이 사고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장소가 주력 공장이 있는 나고야였다. 
곧장 도쿄역으로 달려가 고속철을 잡아타도 도착할까 말까 했다. 도쿄의 외신 기자는 거의 못 갔다.

▶나고야에 상주하는 기자는 일본 언론사뿐이다. 
다음 날 일본 신문을 보니 도요타가 발표한 해명과 변명으로 가득했다. 
가속 페달 사고는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일본 기자만 데리고 회견을 대충 끝낸 것이었다. 
미국 특파원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더니 실은 나고야 지방 기업이었다"며 도요타를 무섭게 공격했다. 
미국 여론이 더 나빠졌다. 결국 미 당국이 칼을 들이대자 사장이 미국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참담했다. 
[만물상] '신뢰'의 값
▶'실패의 본질'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 경영자들에겐 고전이다. 
경영학자 주도로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배를 조직론적으로 분석했다. 
과거의 승리를 절대시해 현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변화를 알리는 현장의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가 그랬다. 현장의 비판과 아우성이 일본엔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세상을 연결해도 귀를 막으니 소용없었다. 
일본 기업이라 부당하게 공격한다는 음모론도 나왔다. 
'우리 도요타를 아낀다'는 국민적 애정이 도요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삼성전자는 다른 듯하다. 스마트폰 일부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사과했다. 
10개국에서 판매된 250만대 전량을 교환·환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액으로 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비용인가. '대충, 조용히 넘어가자'는 속삭임이 없었을 리 없다. 
문제 부품만 교환해주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이 먼저 결단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런 호소를 경영진이 받아들였다.

▶물론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위기 관리에 실패한 도요타가 '세계 최고'를 회복한 것은 품질 관리에 성공한 덕분이다. 
삼성의 이번 사고가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제품을 내놓으려다가 일어났다는 분석이 있다. 
'빨리빨리' '싸게싸게' '대충대충'. 이 습관을 고치려고 20년 전 휴대전화 화형식까지 연 기업이 삼성이다. 
이번 사고가 습관의 재발을 의미한다면 보통 심각한 신호가 아닐지 모른다. 
이번엔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할까. 잘된 실패는 잘못된 성공보다 낫다고 한다. 
'신뢰의 값'을 아는 삼성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